▲ 이성춘
1970년대 들어 영국의 경제는 막대한 사회보장 지출, 경기침체에 따른 높은 실업률, 불황하의 물가상승 등으로 곤두박질했다. 끝내 1976년 IMF(국제통화기금)체제에 들어갔다. 지난 1997년 한국이 겪은 경제파탄을 20년 전에 맞은 것이다. 영국병이 도진 것이다.

1979년 영국병의 치유를 내걸고 집권한 보수당의 M 대처총리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긴축정책, 각종 규제의 완화·철폐, 주요산업의 민영화, 사회보장예산 삭감, 대대적 행정개혁을 단행했다. 이른바 저 비용에 효율적인 ‘작은 정부’ 지향 정책을 펼친 것이다. 이러한 작은 정부 정책은 메이저내각에 이어졌고 1997년 노동당의 블레어내각은 이른바 ‘제3의 길’ 노선을 채택, 정부의 비중과 예산을 줄이고 정부 관리의 효율성을 증대시키는 성과를 올렸다.

‘작은 정부’를 선거공약으로 내세운 미국의 로날드 레이건 대통령은 1981년 1월 취임 초부터 실천에 나섰다. 정부 규모의 양적 질적인 축소조정, 기업의 조세 감면, 연방정부 권한의 주 이관, 연방정부와 주 정부의 사회복지 시책의 분담 등을 추진했다. 특히 취임 이듬해부터 2년간 기업인과 각계 전문가 161명으로 민간자문위를 구성하고 200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의 협조 하에 정부 각 분야의 예산 낭비 조사를 벌였다. 이 위원회는 2478건의 건의를 통해 3년간 4250억 달러의 예산낭비를 막는 성과를 거뒀다. 후임자인 부시 대통령은 이러한 작은 정부 정책을 지속하기 위해 1989년 공직사회의 내부자고발 보호법을 재정하고 공직자 윤리법을 고쳐 공무원에 대한 관리와 통제를 강화했다.

우리나라에서 작은 정부론을 처음 제기한 것은 전두환 대통령이었다. 정부의 기구를 축소하고 공무원의 수를 줄여 국민의 세금 부담을 감소하는 한편 능률적인 정부를 운영하겠다는 것이었다. 5년 단임제 이후 노태우·김영삼·김대중 대통령도 작은 정부를 선거 공약으로 내세웠고 집권 후에는 정부부처의 일부를 재편·통합하기도 했다. 국민들은 정부가 대오각성해 나라의 살림을 작은 예산 작은 기구로 알뜰하게 꾸려나가는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국민의 입은 벌어졌다. 각 정부마다 공무원을 경쟁적으로 증원해 집권 말에는 집권초기보다 더 많은 공무원 수를 확보했던 것이다. 이야말로 국민을 우롱하는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 정부는 어느 정도 솔직하다고 볼 수 있다. 작은 정부 얘기는 일체 하지 않고 적정 규모론을 주장했다. 정부가 꼭 작아야 할 필요는 없으며 정부가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서 예산도 증액하고 공무원을 증원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노무현 정부 4년 11개월 동안 공무원 수를 상당수 늘렸다. 높은 실업률 특히 심각한 청년실업을 해결하기 위한 일자리를 마련해 준 게 아니냐는 어이없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문제는 경제가 좋지 않은데 자리와 공무원 수를 증원하고 또 증원 후 과연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행정을 구현했는가라는 의문에는 어떻게 답변할 지 궁금하다.

1990년 이후 세계의 주요 국가들은 시장주의적 경쟁원리의 도입과 자율성의 강화로 정부를 기업경영식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것, 행정의 상당부분을 정부와 민간이 공동관리하는 시스템을 추구하고 있다. 이른바 신공공관리론과 거버넌스론이다. 정부 독점운영관리를 탈피, 정부가 할 일과 민간에게 위탁할 일을 분류하고 적은 예산에 작은 정부지만 능률적으로 생산성 높은 강한 정부를 지향한다는 방향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신년회견에서 “시대흐름에 맞지 않는 정부조직의 군살을 빼고 방만한 조직에 나사를 조여야 한다”며 알뜰하고 유능한 정부론을 제시했다. 지방정부와 민간이 맡아 더 잘할 수 있는 일은 그쪽으로 넘기는 등의 정부조직 개편과 규제개혁을 과감히 단행할 뜻을 밝혔다. 이를 실천에 옮길 경우 노무현 정부에서 크게 늘린 각종 기구와 양산한 위원회 등은 대거 정리 되고 공무원 수도 축소 재조정 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부담의 축소와 정부운영의 능률성 생산성 제고 등을 위해 방향은 적정하다. 문제는 임기 말까지 그 같은 공약의 실천의지가 중요하다. 인기와 포퓰리즘은 돌처럼 봐야 한다. 내실있는 민영화와 지방분권에 대해 국민들은 지켜볼 것이다.



이성춘 언론인·전 고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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