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동서독이 분단됐던 시절 동 베를린 중심지에 슈타지(동독국가안전부)본부가 있었다. 지금은 슈타지 박물관이라는 간판이 걸리고 관광코스가 됐지만 과거 슈타지는 1700만 동독인들을 억압·감시했던 공포의 대상이었다. 엘리히 빌케가 30여년 간 정보부장으로 재임하면서 서독에 간첩을 침투시켜 정계·재계·군·사회단체·학계 등 1만2000여명을 포섭한 것으로 유명하다.

1974년 빌리 브란트 총리실의 고위참모인 기욤도 슈타지의 첩보장교임이 드러나 브란트를 실각시켰다. 그 슈타지가 1980년대 초 그들이 포섭한 서독의 녹색당의원들을 통해 내독성을 폐지하는 공작을 폈다가 실패했다. 내독성이 겉으로는 동서독간의 화해와 협력을 위한 사업을 펼치지만 이는 동독 공산체제를 궤멸시키려는 공작기구로 본 것이다.

1950년 김일성의 기습남침-3년간의 전쟁-휴전 후 남한 사회는 북한을 불구대천의 원수로 보고 반공·멸공·승공·타공의 대상으로 여겼다. 그런데 1967년부터 정부에 통일 관련한 부처의 신설여부를 두고 뜨거운 논란이 빚어졌다. 결국 언젠가는 있을지모를 장차의 통일논의와 교류에 대비 관계부처를 신설해야 한다는 박정희 대통령의 결심에 따라 1969년 3월 1일 국토통일원이 40여명의 직원들로 서울 장충동 자유센터에 자리잡았다. 북한에 관한 자료수집과 분석, 그리고 통일문제에 대한 연구가 주임무였다. 통일원이 출범 후 제일 먼저 한 일은 통일에 대한 국민의 의식조사로서 혹시나 일부 국민들이 동요할 지도 모른다는 판단 아래 결과는 발표하지 않았다. 초대장관은 신태환 전 서울대 총장. 39년 동안 33명의 장관이 근무해 1인당 평균 1년 4개월씩 재임한 셈이 됐다.

지난주 대통령직 인수위가 마련한 새정부조직 개편안에서 통일부가 폐지되어 정치권 및 전문가들 사이에 뜨거운 찬반론이 일고 있다. 인수위안은 통일부를 외교통상부와 통합해 외교 통일부로 만들었다.

이는 그동안 북한 핵대응 등 대북정책의 방향을 놓고 외교부와 통일부간의 갈등과 마찰을 없애고 정부의 대외정책 노선에 입각해 다양한 대북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겠다는 뜻이 포함돼있다.

이명박 당선자도 “북한 문제를 통일부가 독점하던 시기는 지났다. 유관된 각부처 등과 협력을 도모해야 한다. 통일부는 폐지한 것이 아니라 보다 효율적인 대북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외교부와 합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대통합민주신당과 일부 전문가들은 “통일부를 폐지한 것은 대북정책에 혼선을 초래하고 남북관계를 경직·악화시키는 잘못된 처사”라며 폐지안을 취소할 것을 주장했다. 이들은 “인수위안은 외교부와 1대1통합이 아니라 해체·분해해서 일부만 흡수함으로써 대북정책의 추진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통일부의 폐지안에 대해서는 “대북 퍼주기와 저자세를 바로잡고 한미동맹을 더욱 강화하려는 것” “과거 서독처럼 총리실(청와대)과 내독성의 이원화 전략으로 가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되고 있다. 사실 어느 면에서 통일부가 지나치게 비대화하고 햇볕정책이래 지나친 저자세 등으로 북한에 끌려다니는 인상을 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근40년 간 협상·지원 등 대북 업무를 담당했던 만큼 기구와 기능을 축소·재조장해서라도 존치시키는 게 타당하다. 또한 인수위의 설명대로 보다 효율적인 대북정책을 위한 외교부와의 통합이라면 명확한 기능과 역할의 분담 안이 하루빨리 제시돼야 할 것이다.

언론인·전 고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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