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월 도
천태종 삼운사 주지
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건 무엇인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사랑스러운 건 무엇이겠는가. 그 어느 것도 아니고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다. 자신의 생명이다. 이것은 모든 생명체가 다 똑같다. 나도 그렇고 남도 그렇고 축생도 미물도 예외가 아니다. 모두 각자 자신의 생명이 제일 귀중하다. 이렇게 내 생명이 귀중하면 그만큼 남의 생명도 귀중한 줄 알아야 한다. 내 생명 아끼듯 남의 생명도 아껴줘야 한다.

생명의 귀중함에 대한 일화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옛날 경상도 최부자 집에 젊은 머슴이 한 명 새로 들어왔다. 힘도 세고 일눈까지 밝아 아주 신통하여 최부자는 그를 각별하게 신임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파계사 스님이 와서 머슴의 얼굴상을 봤다. 전생의 고약한 업장(業障)이 너무 두터워 언제 어디서건 불씨만 와닿으면 터질 화약고처럼 분노와 살생의 기운이 서려 있었다. 스님은 최부자에게 “괜한 횡액 당하지 말고 빨리 내보내라”고 재촉했다.

스님의 말씀이 워낙 단호했던 터라, 최부자는 아깝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머슴을 내보냈다. 엉겁결에 쫓겨난 머슴은 참으로 난감하기 이를데 없었다.

고향으로 가려고 강가 다리목에 도착하니 지난 홍수 때문에 다리마저 떠내려가고 건널 수가 없었다. 강기슭에 주저앉아 박복한 신세 한탄을 하고 있는데 흙탕물 속에 뭔가 이상한 물건이 하나 보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썩은 집단에 개미들이 새까맣게 엉겨붙어 있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불쌍한 개미들을 보면서,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했다. 머슴은 측은한 마음이 일어 그 집단을 끌어당겨 개미들을 모두 땅으로 옮겨 주었다. 그러다가 날이 저물어 하는 수 없이 최부자집으로 되돌아가 홍수에 다리가 끊겨 갈 수 없었던 사연을 말씀드리고 하룻저녁 더 재워줄 것을 간청했다. 그 파계사 스님이 돌아온 머슴 얼굴을 보더니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분명 살상의 기운이 가득했는데 지금은 전혀 그런 기운이 없구나. 무슨 일이 있었느냐.” 머슴이 스님에게 강가에서 있었던 일을 자세하게 말씀드렸다.

스님은 무릎을 치면서 말했다. “그랬구나. 참 잘했다” 짚단 하나를 까맣게 덮을 정도라면 개미가 수만 마리는 족히 될 것이다. 미물이긴 하지만 수만마리의 개미생명을 구해주고 엄청난 복덕을 지었으니 전생의 두터운 업장이 깨끗이 소멸됐구나. 이말을 듣던 머슴이 감격하여 스님께 눈물로써 삼배를 올리고 새로운 인생을 살았다는 이야기이다.

다른 생명을 살려주는 방생의 복덕이 이렇게나 크다. 방생의 마음은 또한, 모든 생명의 귀중함을 알아내 생명처럼 존중하고 사랑하여 더불어 행복하고자 하는 상생(相生)의 마음이다.

현대사회의 심각한 문제들이 대부분 이런 점을 간과하는 데서 비롯되고 있음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아무쪼록 무자년 새해에는 가정마다 사회마다 상생의 향기가 깃들기를 기원한다. 우리 삶의 수준이 상품(上品) 상생(上生)의 차원으로 성숙하기를 간절히 희망해 본다. 그것만이 진정한 행복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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