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상 빈 강릉아산병원 신경정신과장

백 상 빈  강릉아산병원 신경정신과장
병원에서 치료하는 질병 중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바로 암이다. 암은 초기에 발견하여 제거하지 못하면 점차 전신의 장기들로 퍼져나가기 때문에 늦으면 그야말로 속수무책이 된다. 그래서 말기 암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는 것을 사형선고에 비유하기도 한다. 또한 암은 누구에게 생길지 미리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어떠한 사람도 일생 동안 암의 공포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즉 자신이 현재 건강하기 때문에 이 건강을 계속 지켜내기만 한다면 앞으로 암을 피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누구도 감히 자신 있게 예측할 수가 없는 것이다.

왜 이토록 무서운 암이 발생하는 것일까?

암은 신체의 외부에 있던 병균이 신체 내부로 침투하여 질환을 발생시키는 것이 아니다. 암은 애초부터 우리 몸 내부에서 저절로 생겨난다는 점이 중요한 특징이다. 이러한 암의 발생과정은 세포의 변성에서 비롯된다. 즉 원래 자기신체의 일부였던 정상적인 세포가 느닷없이 이질적인 암세포로 변하는 과정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암세포는 더 이상 신체의 생명지속을 도와주는 세포 원래의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거꾸로 한술 더 떠서 생명에 결정적인 치명타를 주게 된다. 즉 원래 나의 일부였던 것이 어느덧 나를 파괴하여 죽이는 요망한 것으로 바뀐다는 것이 암 발생에서 볼 수 있는 이상한 특징인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특징적 방식은 비단 생물학적 신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 인류의 사회생활 도처에서도 흔하게 발견된다. 직장생활에서 자신이 속한 조직의 유지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역으로 조직의 존립에 해가 되는 사람을 ‘암적인 존재’라고 부른다. 즉 어떤 사회조직의 외부에서 누군가 그 조직을 파괴하기 위해서 침입 혹은 공격을 한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그 조직 내부에 계속 있어왔던 조직 구성원 중 하나에 의해 조직이 파괴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 적으로 규정할 대상이 모호해진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적은 항상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부의 적’은 어떠한 경고신호도 없이 조용히 성장하여 갑자기 뒤통수를 치듯이 치명타를 날리기 때문에 외부의 적보다 훨씬 더 위험한 ‘암 덩어리’인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더 확장해 보면 인간종족도 지구 생태계의 입장에서 보면 얼마든지 ‘암적 존재’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원래 지구 생태계를 구성하는 일부분으로 역할을 했던 인류가 환경을 오염시키는 주역으로 변하게 되면서 지구생태계 전체의 생명을 위협하는 ‘내부의 적’이자 ‘치명적 암’으로 현재 자리매김하고 있는 중이다. 만약 이런 경향이 계속 끝까지 진행된다면 지구생태계는 스스로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부득이 ‘암 조직’으로 변해버린 인류를 제거하는 조치를 언젠가는 취해야 할 지도 모른다.

이는 아마도 먼 훗날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이 인간에게 적대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한다는 증후가 수많은 인명을 앗아가는 거대한 신종 자연 재해들의 잇따른 등장으로 이미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서해안 기름유출 사고는 정신의학의 관점에서는 인류의 자해 혹은 자살기도와 같은 심각한 심리적 상태에 비유될 수 있다. 쏟아진 물을 온전히 주워 담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서해안 생태계가 한국 사람들에게 어떤 복수극을 어떤 식으로 벌이게 될 지 속수무책으로 계속 지켜봐야만 하는 무능력한 구경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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