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춘  언론인·전 고려대 석좌교수
일본사회당은 1945년 일본이 패전한 직후 노동자·농민·재야운동권 인사들을 중심으로 창당했다. 사회당은 창당 후 10년 동안 좌우파간의 치열한 이념논쟁 내분을 겪었다. 오랜 진통 끝에 좌·우파는 1955년 10월 13일 당외의 진보세력 등과 함께 사회당으로 재창당 했고 이에 자극받은 민주당과 자유당은 한 달 뒤 보수합동의 자유민주당을 출범시켰던 것이다. 통합 후 좌파-급진파가 당을 주도하자 온건개혁파는 1959년 탈당해 민주사회당을 창당했다. 냉전기간 중 사회당은 집권자민당에 이어 중의원에서 140∼170여석을 유지하면서 거대한 진보·좌파정당으로 일본의 정치, 국정운영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1980년대에 들어 중공이 개혁·개방에 착수하고 소련과 동구공산국들에도 개혁바람이 불면서 사회당의 의석은 총선 때마다 감소해 1986년 폭력혁명 노선을 폐기하기에 이르렀다. 1990년 총선에서 136석을 정점으로 사회당의석은 감소행진에 들어가 결국 1994년 무라야마 당수는 적대정당인 자민당과 연립내각을 구성했다. 실로 47년 만에 연립정부형식으로나마 집권했지만 치러야할 대가는 엄청났다. 종래정책을 버리고 자위대 인정, 미일안보조약 수정, 시장경제 도입 등 자민당 정책을 찬성한 것이다. 사회민주당은 선거 때마다 의석이 줄어 현재 중의원 의석은 7석으로 군소정당, 3류 정당으로 추락했다.

필자가 일본의 제2정당, 자민당에 맞서 진보노선의 한축으로 이름을 날렸던 사회당의 63년 창당-중흥-추락사를 길게 소개하는 이유는 대표적인 2가지 교훈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하나는 정당이 이념에 지나치게 집착·고집해서는 안 된다는 것. 둘째는 정당이 시대적 변화와 국민의 요구를 파악·수용하지 않으면 추락·몰락의 길로 접어든다는 것이다. 작년 12월 대선에서 참패한 민주노동당이 흐트러진 당심을 추스르고 18대 총선에 대비해 당을 대대적으로 쇄신하겠다는 비상대책위의 노력이 무산됐다. 지난 3일 임시전당대회에서 비상대책위가 일심회 관련자의 제명을 골자로 한 당의 혁신안이 부결된 것이다. 이른바 북한지향의 종북계로 지목된 자주파(NL)와 온건현실적인 평등파(PD) 간의 대결에서 자주파가 승리한 것이다. 민노당은 건국 이래 진보정당으로서는 처음 국회에 진출한 후 국민적 여론, 특히 갖가지 선거를 거치면서 부유세와 재벌해체 정책을 유보했고 개혁적 의견을 국정에 반영시키는 데 그 나름대로 노력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당 노선에 있어 자주파와 진보파는 끊임없이 갈등을 되풀이해왔다. 대선 후 평등파는 북한에 맹종하고 이념의 고수로는 18대 총선에서도 대패·참패할 것이라며 국민 앞으로 다가가는 대대적인 쇄신안을 냈다가 자주파의 변함없는 이념기조에 패배한 것이다. 그 후 민노당은 당 사수·수습·탈당 움직임으로 어수선하다. 창당 후 최대의 분당위기를 맞은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민노당, 특히 자주파에게 일본사회당의 교훈을 강조하고 싶다. 이념만을 고집하는 정당의 시대는 지났다. 이념보다는 국민의 요구, 시대적 변화를 수용해 미래를 열어가는 정당의 시대가 벌써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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