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성춘 언론인·전 고려대 석좌교수
대한민국의 국보 제1호인 숭례문(남대문)이 방화에 의해 온 국민과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5시간 동안 불에 탄 뒤에 무너졌다. 우리민족의 정신과 자존심이 그대로 무너져 내린 것이다. 역사유적과 유물, 즉 문화재는 하루 아침에 뚝딱 만들어지고 불쑥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또 억만금을 들여 짓고 세운다고 문화유물이 되는 게 아니다.

문화재에는 오랜 세월에 걸쳐 그 민족의 피땀 어린 정성과 노력, 발전과 퇴락, 흥망과 성패, 기쁨과 슬픔, 그리고 정신과 혼이 켜켜이 쌓여지고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인고와 영욕의 혼과 정신이 담긴 국보 제1호인 숭례문이 불타고 무너진 것은 민족의 정신과 혼의 추락과 다름이 아니다.

숭례문은 태조 이성계가 새나라를 세운 후 600여년 이상 파란만장한 풍상을 겪어 온 좁게는 서울, 넓게는 한국의 등대와 파수대요 큰대문이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일제에 의한 망국(亡國), 8·15해방, 북의 6·25 남침, 5·16, 12·12, 5·18 쿠데타 등 겪으면서도 꿋꿋하게 지켜온 수호신이었다. 나라와 민족의 애환이 왕래했던 현관이요 큰대문이었다. 1920년대 상해임시정부시절 구한말 군의 지도자였던 노백린 군무총장은 망국의 한과 극도의 영양실조로 병약해진 몸으로 이따금 한 밤에 일어나 “말을 대령하라. 남대문을 열고 왜적을 치러 가자”고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고함을 질러 동숙하던 노애국자들의 눈물을 흘리게 했다고 한다.

우리겨레의 혼과 정신이자 믿음과 자부심이었던 숭례문을 불타고 무너지게 한 것은 모두의 책임이다. 우리국민은 역사와 조상에게 모두가 죄인이다.

땅 보상비에 불만을 품은 비뚤어진 마음을 지닌 70대가 불을 지른 것도 그렇고 국보 제1호라는 말이 부끄럽게 경비원도 없고 소형 소화기 8대만 덜렁 비치한 것, CCTV는 범행을 잡지도 못한 것, 그리고 정치권의 책임논란 등은 우리를 절망케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 국민과 우리사회의 자화상이요 수준인 것이다. 가슴이 무너져 허탈한 국민들에게 해외로부터는 한국의 대표적 상징(Landmark)이 무너졌다는 얘기가 들려오고 있다. 랜드마크인 국보 제1호를 지키지 못한 우리는 문화국민의 자격이 없다고 부끄러워해야 하고 깊이 반성해야 한다.

국민의 십시일반의 성금으로 다시 짓자는 이명박 당선자의 제의는 경청할 만하다. 온 국민의 정성과 마음을 모아 조상의 혼과 정신이 담긴 전통적인 한국미가 넘치는 장엄한 숭례문을, 바위같은 숭례문을 하루 빨리 재건축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흐트러진 시민정신 국민정신을 바로잡은 역사적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렇게 해서 참다운 문화민족, 문화국민이 돼야 한다. 특히나 강원도민들은 수년전 낙산사의 전소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언론인·전 고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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