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건국 이래 대통령 취임식을 거행하기 전에 대통령당선자와 물러나는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만나는 관행이 있다.

즉 취임식이 거행되는 1월 20일 상오 대통령 당선자는 백악관을 방문, 이임하는 대통령과 차를 들며 환담한다. 환담이 끝나면 두 사람은 나란히 도착한다. 취임식이 끝나면 새 대통령 내외는 전임자 내외가 전용차를 타고 고향으로 떠나는 것을 전송한다.

이러한 백악관 예방-환담-취임식장 동행-취임식 입회- 전송 등의 관행을 애써 지키는 것을 평상시에는 여야로 갈리고 대선 때는 라이벌이 되어 치열한 비판·비난 공방을 벌였지만 권력의 인수·인계, 즉 정권교체만큼은 화기 속에 합심해서 이행했다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기 위함이다.

새 정부 출범 6일 앞둔 오늘 현재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인수위원회, 통합민주당은 북극의 빙벽처럼 꽁꽁 얼어붙었다. 정국이 전면적인 교착상태에 빠진 것이다. 이 당선자는 18일 정부조직법 개정 협상이 결렬되자 현행 18개 정부부처 가운데 통폐합되는 부처를 제외한 13개 부처의 장관과 2명의 무임소국무위원의 내정자 명단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현행체제대로 새 정부의 운영을 시작하고 나머지 5개 통폐합부처는 임시로 차관체제로 운영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이에 대해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는 “법을 어기고 다수당을 무시하는 당선자의 독단이다. 한마디로 민주주의를 하지 않겠다는 얘기 아니냐”고 반발했다.

당초 민주당이 조직개편안에 크게 반대한 것은 통일·여성·해양·과기 등 폐기 부처가 너무 많고 폐지이유를 수용할 수 없다는 것. 이에 협상과정에서 한나라당과 인수위는 통일부만을 존치하는 안을 냈으나 민주당은 해양부의 부활을 강력히 주장했고 당선자는 더 이상 밀릴 경우 개편의 근본취지,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에 큰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보고 인선을 단행한 것이다.

당선자가 발표를 강행한 데는 국회를 존중해 현행법대로 관계 장관을 내정하고 아울러 다수당의 발목잡기로 새 정부출범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것을 민심에 호소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사실 정치권은 국민의 큰 심판인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한 당선자가 그의 구상과 공약대로 새 정부를 출범시키도록 이해하고 협조하는 것이 원칙이다. 먼저 당선자의 뜻을 존중해 새 정부의 구도를 수용한 후 장차 국정운영을 해 나가는 데 있어 당부(當否)에 대해 비판·견제·개선하는 것이 일반적 상식이다.

다만 인수위와 한나라당은 모든 정당들에 대해 개정조직안의 당위성과 합리성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납득시키는 노력을 다각적으로 펼쳤어야 했다. 아무려나 금명간 양측이 극적인 화해·타협이 없는 한 건국 이래 처음으로 내각 없는 새 정부가 출범하고 새 정부는 한동안 국무회의도 열 수 없는 기형적인 모습을 드러낼 게 분명하다. 협상이 벽에 부딪치고 자칫 내각 없는 기형적인 새 정부가 출범하게 된 데는 지난 10년간 대립과 갈등으로 누적된 묵은 감정에 의한 대화 없는 구태정치 껍데기 정치 그리고 집권당을 제대로 이끌지 못한 노 대통령에게 적지않은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참으로 시간이 너무나 없다. 야당들의 주장대로 이 당선자가 정부조직을 자의로 지나치게 손질한 것인지, 민주당 등이 새 정부 출범에 의도적으로 발목잡기를 하고 있는지 등을 포함한 여러 가지 평가와 심판은 오는 4월 9일 18대 총선에서 국민이 가릴 것이다.

언론인·전 고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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