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학 주
문학박사(강원대 강사)
21일은 정월 대보름이다. 각 마을마다 산제와 서낭제(성황제)를 비롯한 각종 마을 제사도 행해지는 때다. 마을제사는 축제를 하기 전에 반드시 치러지는 마을 공동체 행사이다. 보통 돼지를 잡고 술을 빚으며 시루떡을 찌고 메(밥)를 지어 제를 올린다. 경건하면서도 왁자지껄한 분위기는 신과 인간이 함께 어울리는 신성시공(神聖時空)이 된다. 제를 올리고 음식을 나눠먹고 함께 술에 취한다. 그리고 신의 강림과 함께 소원이 이뤄질 것이라 믿는다.

마을 제사에서 개인의 종교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불교신자 기독교신자가 따로 없다. 마을 제사를 지내는 순간에는 마을이라는 공동체의식이 개인의 종교를 초월, 하나가 된다. 이념도 종교도 빈부차이도 사라지고 함께 어울려 난장(亂場)이 된다. 바로 카오스(혼돈)의 마당이 되는 것이다.

마을 제의를 동제(洞祭)라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같은 목적을 갖고 제사를 올린다는 뜻이다. 마을의 안녕과 축복과 풍요 및 무사고를 비는 것이다. 개인의 소원을 빌어도 좋고 마을의 소원을 빌어도 좋다. 소지를 올리면서 마을 공동의 축원과 함께 집집마다 바라는 바를 거론한다. 소지가 잘 오르면 그 해 집안의 소원이 이뤄질 것이고, 소지가 오르지 않으면 한 해 동안 경건한 마음으로 매사 삼간다.

나약한 인간의 삶을 탈 없이 이어가기를 바라는 아주 작은 소망이 동제를 있게 만들었다. 같은 마을의 사람이 같은 신께 축원을 하면서 모두 아무 탈 없이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동제가 비롯된 것이다. 한 마을 사람들은 같은 배를 탄 사람들이다. 함께 잘 살고 함께 건강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동제의 정신이다.

동제에는 산신제도 있고 성황제도 있으며 특정 신을 모시기도 한다. 홍천군 내면에서는 권대감제, 인제군 기린면에서는 박대감제를 지낸다. 인제군 상남면에서는 김부대왕을 모신다. 영월일대에서는 단종임금이 마을의 신이다. 팔봉산에서는 산신과 토지신 외에 3부인신을 모신다. 이처럼 지역마다 모시는 신들이 다 다르다. 그냥 산신(山神) 천신(天神·川神) 성황신이 되는 것이다.

홍천군 내면 일대에서 모시는 권대감은 단종의 외조부라고 한다. 단종의 외조부가 난을 피해 오다가 머문 곳이 홍천군 내면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일대에는 권대감의 설화도 아주 많다. 이곳에 칡이 나지 않는 것은 권대감이 타고 오던 말이 칡넝쿨에 걸려 넘어졌기 때문이며, 삼봉약수는 권대감이 발견해서 마을 사람에게 널리 이롭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인제군 상남면의 김부대왕은 신라 마의태자를 중심으로 형성된 동제이며 설화이다. 망국의 한을 짊어진 채 재기를 노렸으나 결국 비운의 왕자로 남았기에 신으로 모셔진 것이다. 마의태자의 신앙은 인제를 비롯해서 고성 금강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강원도의 동제는 비운의 주인공을 추모하는 인정이 깃들어 있다.

동제! 그 이름만 들어도 신명이 난다. 마을의 발전과 공동체 의식을 고양한 동제의 정신이 절실한 요즘이다. 마을에는 동제가 있고, 그것을 확대하면 시·군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각종 제의 형태의 축제가 된다. 동제가 마을의 안녕을 빌듯이 우리 모두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자. 마을이 잘 살고, 시·군이 잘 살고, 강원도가 잘 살면, 대한민국은 당연히 잘 살게 되는 것이다. 어찌 동제의 뜻에 함께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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