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 희 종

상타원 교무(원불교 강원교구)
국보 제1호 숭례문이 방화로 소실됐다. 600년 역사가 허물어져가는 모습을 보고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어찌할 수 없었다. 한 노인의 사회에 대한 분노의 폭발이 우리들로 하여금 소중한 역사를 잃게 했다. 오히려 사회의 어느 곳에서도 그 노인의 말에 귀 기울여 주는 곳은 없었다고 불평만 한다. 놀라움과 경악 그 자체이다. 그 노인이 폭발 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문제의 단면에 대해서도 한번쯤은 생각 해봐야 될 것이다. 하지만 온 국민이 슬픔에 잠겨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도 반성하지 않고 탓하는 그도 문제다.

그러나 정작의 문제는 방재이다. 최선의 방재는 예방이라고 한다. 미연의 예방이 최선이기는 하지만 사고 발생의 요소는 곳곳에 산재 해 있다. 언제 어떻게 우리들에게 다가올는지 예측 불허의 천재지변도 배제하지는 못 할 일이다. 다만 사고에 대한 대처능력이 피해를 줄 일 수는 있을 것이다. 그 노인이 비록 방화를 했지만 발 빠른 대응을 했더라면 국보를 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숭례문의 방화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방재만 잘 하였으면 그래도 조금은 건질 수 있었을 텐데…

삼척시는 ‘삼척 7 대 전략산업’을 매진하고 있다. 7대산업 중 그 첫 번째 심혈을 기울이는 산업이 방재산업이다. 방재산업클러스터 구축사업으로 방재산업 테크노 밸리 인프라구축사업과 최첨단 방재 산업단지조성사업이다. 방재산업으로 삼척을 발전시키겠다는 발상은 탁월한 선택이라고 말하고 싶다. 삼척은 지역의 특성상 방제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역이다. 삼척 지역의 과거 역사를 돌이켜보면 조선 500년 동안 대수(大水), 기근, 홍수, 폭풍우, 해일, 지진이 주기적으로 찾아왔고 삼척전역이 물에 잠긴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최근들어서도 태풍루사와 매미 때는 엄청난 피해가 났다. 재앙 때마다 사직(社稷)에서 신명 (神明)을 섬기고 빌었고, 1660년에 부임한 삼척부사 미수 허목(許穆)은 동해비문을 지어 동해를 다스렸다.

동해를 진압했다고 해 진동비(鎭東碑)라 하고 척주동해비라고 우리들에게 더 잘 알려져 있다. 삼척에는 집집마다 동해척주비탁본이 없는 집이 거의 없다. 액운을 막아준다는 부적(?)처럼 액자로, 도자기로 갖고 있다. 이 비문에는 동남아시아를 흐르는 해류(海流)의 신(神)들 이름이 거명돼 있다. 미루어 보면 부사 허목은 동해바다 조류의 흐름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조류의 흐름을 안다는 것은 자연의 조화와 이치를 잘 안다는 것으로 짐작된다. 자연의 이치에 밝은 것은 우주의 흐름을 잘 정리 해 놓은 주역을 허목은 꿰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부사 허목이 해일을 잠재운 것은 바다 재앙의 근본 원리를 알고 동해(東海)와 관련된 모든 해신(海神)들에게 빌고, 달래고, 애원했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아무튼 허목은 ‘근본 원리’를 알았기에 동해를 다스릴 수 있었을 것이다.

허목은 당시 방재의 일인자라고 할 수 있고, 조선시대에 삼척은 방재의 중심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사적으로나 지역적으로나 모름지기 삼척은 방재 산업의 1번지가 될 수밖에 없다. 탁월한 선택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알찬사업이 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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