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헌 소설가(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임동헌 소설가
영화 얘기를 하겠다. 새로운 정권이 출발한 시기에 너무 한가한 얘기인가? 아니다. 소설 읽는 사람이 워낙 적으니 소설과 비슷한 화법의 영화를 통해 봄 오는 소리를 듣고 싶다는 뜻이다. 먼저 ‘짝패’다. 액션 영화를 잘 만드는 류승완 감독의 작품이다. ‘짝패’는 투기 바람이 분 고향에서 땅을 볼모로 출세욕에 사로잡힌 촌놈의 허망한 이야기를 기둥 줄거리로 삼고 있다. 이 영화에서 고향 사람을 등쳐먹는 장필호(이범수 역)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살아 남는 사람이 강한 것이 아니라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다.’ 이 역설을 기억하는 사람은 관람료가 아깝지 않았을 것이다. 이 냉소는 ‘황산벌’(이준익 감독)의 김유신 장군 입에서도 똑같이 나온다. 왜 이런 대사가 연속해서 나왔을까. 간단하다. 역사를 돌이켜 봐도 그렇고, 현실을 봐도 그렇고, ‘살아 남는 사람이 강한 게 아니라 강한 자가 살아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땅의 스승과 부모들은 강한 사람이 살아남는 법이라고 가르친다.

또 다른 영화 중에 ‘나는 전설이다’가 있다. 프란시스 로렌스 감독은 이 영화에 윌 스미스를 내세워 SF 영화의 새로운 장치를 선보인다. ‘나는 전설이다’에서 의학박사 출신 대령은 인류를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간 변종 바이러스에 맞서 인간을 구원하는 데 목숨을 바친다. 그런데 여기에 인종 차별 극복에 평생을 바친 레게 가수 밥 말리가 나온다. 밥 말리의 자켓 ‘Legend’가 등장하고, 음악과 사랑으로 인종차별을 치료할 수 있다는 밥 말리의 메시지가 등장한다. 클라이맥스가 밋밋한데도 흥행에 성공한 비결이 밥 말리의 정신을 빌려온 데 있다.

이들 영화에서 어떤 기미가 느껴지지 않는가. 한 가지는 이제 대통령으로서의 첫 걸음을 뗀 인간 이명박을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자연인 이명박은 강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는 미국의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유력한 배럭 오바마를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다. 미국 역사의 아킬레스 건과 같은 흑인이 대통령이 된다면 그는 밥 말리가 말한 대로 인종 차별을 일부나마 치료한 사람이 된다. 그렇다면 그 역시 강한 사람이다.

배럭 오바마에게 필자의 목소리가 전달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혹시 필자의 목소리가 들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 가지 질문하고 싶다. 우리 사회는 지금 강한 자가 살아남는 시대인가, 살아남는 자가 강한 시대인가. 질문은 했지만, 필자 스스로 답하건대, 최소한 지금까지로 보면, 우리 사회에서는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 그래서 한 가지 부탁하고 싶다. 살아남는 자가 강한 시대를 만들어 달라. 대통령은 아마도 그렇게 하겠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믿지 못하겠다. 한두 가지만 예를 들자. 예컨대, 아무리 작은 정부를 만든다고 해도 장관급의 ‘중소기업부’를 신설했어야 마땅했다. 한국이 재벌 중심의 경제로 굴러가는 나라인 것만은 분명하지만 중소기업은 재벌 기업의 실핏줄인 탓이다. 실핏줄, 한 번 터지면 걷잡을 수 없다. 못 믿을 것은 또 있다. 영어 교육을 아무리 많이 받아도 영어를 못하는 사람은 평생 못한다. 웅변학원을 아무리 다녀도 눌변인 사람은 달변가가 될 수 없다. 또, 달변가가 된다 해도 달변이 우월의 단서는 아니다. 우리 말을 아무리 잘해도 누구나 국어 교사가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편지 잘 쓴다고 소설가가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생각해 보자. 자연인 이명박이 영어를 잘해서 대통령이 됐는가.

고백하건대, 필자는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았다. 그러나 앞으로는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돌팔매를 맞는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러자면 서민들이 강한 사람이 되는 무대를 만들어줘야 한다. 그들은 모두 강해지기를 원한다. 나도 그렇다. 서민을 강하게 만들어 줄 때 대통령도 강한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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