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식 논설실장
실학은 조선 후기에 대두된 일련의 현실 개혁적 사상 체계를 말한다. 실학은 종래의 공리공담 중심인 주자학의 관념 세계에서 벗어나 실제의 세계에서 민생과 사회 문제를 해결해 보자는데 그 뜻이 있다.

강의할 목적이 아니므로 실학에 대한 기본적 생각의 틀은 이렇게 간단한 소개로 그치고, 잠시 18 세기 우리 지식인들의 동향 한 자락을 포착해 보자. 그 무렵 노론(老論) 내부에서 호락논쟁(湖洛論爭)이 벌어졌다. ‘호’란 지금의 충청도 지방을 이르고, ‘낙’이란 경기도 지방을 말한다. 충청도 출신 사대부들은 ‘인간과 사물의 본성이 다르다(人物性異論)’고 했고, 경기도 쪽 지식인들은 ‘인간과 사물의 본성이 같다(人物性同論)’고 주장한다.

그런데, 인간과 사물의 본성 문제를 논한 이 호락논쟁을 국제정치사적으로 살피면 또 다른 진실이 나타난다. 즉, ‘인간’이란 ‘명(明)나라’를 말하는 것이요, ‘사물’이란 ‘청(靑)나라’를 이른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논쟁은 청이 욱일승천의 기세로 명을 압박하는 당시의 국제 정황을 반영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결국 호론(湖論)은 명나라를 지지하는 ‘위정척사파’로, 낙론(洛論)은 청나라를 지지하는 ‘북학파’ 혹은 ‘개화파’로 간다. 이 두 지식인 그룹의 논쟁을 거치면서 역사는 청 쪽으로 흐르게 되고, 북학파의 실학 정신이 세상을 주도하게 되는데-.

이를 왜 다시 떠올리는가? 명분과 이념을 지향하는 위정척사파와 비슷한 노무현 진보 정권을 넘어 마치 북학파처럼 실용으로 가는 이명박 정부가 세상을 주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퇴계 이황이 “이단이다” 하고 비판했던 양명학의 지행합일과도 비슷한 정신이 또한 이 시대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는 양명학의 대표적 인물인 정제두와 함께 실학의 선구자 유형원 박제가 정선 김홍도 등 당대 대가들을 떠올리면 중농주의와 상공업주의, 진경산수화와 서민풍속화를 만날 수 있을지언정 이분들에게서 탐욕과 부패의 냄새는 맡을 수 없다. 실학의 선구자들이 실용주의로 가자 하면서 어찌 스스로 민중 민생에 반하는 삶을 살았겠는가 싶기 때문이다.

21 세기.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가 18 세기의 호락논쟁과 비슷한 선거전을 치른 이후 본격 등장했다 하더라도 그 출발이 자유시장 이데올로기라는 점에서 오늘의 실용주의와 옛날의 실학은 그 성격을 같이할 수 없다.

신정부가 지향하는 시장경제적 실용주의를 백번 양보해 이해한다 하더라도, 또 그것이 유럽의 합리주의에 기초하여 효율성에 따라 움직인다 하더라도, 세계 여러 곳에서 이미 글로벌 금융시장의 위기, 조직화된 범죄, 돈 세탁, 부패, 사기, 사회 양극화 등 주주 자본주의 또는 카지노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들이 첨예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음을 외면할 수 없다. 지금 당장 시장 이데올로기의 수혜를 톡톡히 본 일단의 국무위원에게서, 지행합일에 반(反)하는 비(非)양명학적 일부 교수 출신 장관들에게서 드러난 질 나쁜 결과물을 보고 있지 않은가.

등용된 국무위원 중에 80%가 종부세를 납부하고, 40%가 병역을 면제받고, 20%가 이중국적 자녀를 둔, 대한민국 역대 최고로 도덕적 경계심이 부족한 ‘귀족 내각’으로는 서민들이 아픔을 느껴 가질 수도, 저 실학 시대의 서민을 위한 진정한 실용주의의 재연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 성장을 위해 택한 길이라 그의 직접 지휘 아래 지속 성장 등 실용주의 정책이 일부 긍정적으로 작용할지라도 일제차를 굴리는 부도덕에 겸해 부동산 투기로 수십 수백억 원의 재산을 모은 인물로 채워진 정부 아래서는 욕망과 부패의 시큼하고 더러운 기운만 번지게 될 우려감이 앞선다는 말이다.

정권 교체 직후 허니문 시즌에 거론하는 이 불온한 생각을 누가 좀 멈추게 하라. 혹은 누구도 좋으니 더불어 신판 호락논쟁을 한 판 벌여 보자.

이광식 논설실장 misa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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