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 송

조계종 제3교구 본사 신흥사 부주지
우수, 경칩을 지나 이제 봄기운이 완연해졌다. 겨울이 언제 가려나 싶었는데, 사찰을 참배하는 분들의 옷차림을 보면 여름도 금세 다가 올 태세이다.

기후학자들의 예측을 빌리지 않더라도 갈수록 봄, 가을이 줄어가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여러 환경적 요인 때문에 멀지 않은 장래에 우리나라도 아열대성 기후로 바뀐다고 하니, 지금 내 곁에 있는 꽃과 나무들이 더욱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우리가 잊고 사는 것 중 하나가 사계절의 고마움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반복되어 펼쳐지는 땅에 산다는 것은 축복 중에 축복이다. 이러한 계절의 변화는 우리의 사유와 세계관, 그리고 종교관에 보이지 않게 큰 영향을 미쳐왔고, 우리의 일상적 삶 곳곳을 지배해왔다. 지금 당장 계절이 한 계절로 고정된다고 상상해보면, 계절의 변화가 우리에게 주는 혜택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새삼 절감해 볼 수 있다.

사계절은 생(生)한 것은 반드시 멸(滅)한다는 생멸법을 자연스럽게 체득케 하고,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생명체가 지닌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순리를 깨닫게 한다. 또한 삶을 살아가면서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알게 해주고, 받은 것을 돌려줄 줄 아는 회향(廻向)의 미덕 또한 가르쳐 준다. 그러나 우리는 바쁜 일상을 살면서 이러한 순리와 깨달음을 자주 망각하거나, 애써 못 본체 하려 한다. 살과 뼈에 새겨진 사계절의 순리를 역행해서 몸을 망치고, 일생을 그르치는 예를 우리 주변에서는 자주 볼 수 있다. 공생과 상생의 미덕을 발휘하지 않아 천애의 고아처럼 살거나,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는 경우도 자주 접하게 된다.

무엇보다 생명이 움트고 꽃을 피우는 계절인 만큼, 생명과 생태에 대한 관심과 존중을 표해야 할 시기이다. 겨울 땅을 뚫고 나온 꽃을 보며 이쁘다고 감탄하면서, 정작 생명, 생태에 대해 무관심하다면 그 사람이 본 것은 필시 생명 없는 조화(造花)에 불과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호주의 한 원주민 부족은 덜 익은 사과를 절대 먹지 않는다고 한다. 덜 익은 것은 아직 자라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삶에 대한 애착이 그만큼 클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은 완전하게 익은 사과를 양식으로 섭취한다. 다 익은 것은 성장이 멈춘 것이고, 떨어질 일만 남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모든 생명은 자신의 목숨이 다할 때 자신을 남에게 보시하는 것을 마지막 보람으로 삼는다고 여기고, 익은 사과를 먹는 것은 소원을 이루어주는 행위라고 믿는다.

생명, 생태에 관한 우리의 사유가 적어도 이 정도까지는 이르지 못한다 할지라도, 다른 생명을 파괴하고, 생태계를 망가뜨리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말아야 한다.

이처럼 봄은 어리고 여린 생명들에 대한 존귀함을 터득할 수 있는 계절인 만큼 이를 통해 한번쯤 생명 전반에 대해 사유를 넓혀 나갔으면 좋겠다.

옛 스님들은 길을 갈 때 혹여라도 부지중에 길 위의 생명을 해할까봐 지팡이를 짚고 갔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나 때문에 생명을 위협받는 동물이 있을까봐 미리 경계한 것이다. 이 봄에 그 지팡이가 다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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