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역대 야당들 중에서 가장 국민의 사랑과 지지를 받았던 정당은 1950년대 활약했던 민주당이다. 민주당은 이승만 대통령의 영구집권을 위해 자유당이 강행한 사사오입 개헌에 반발한 범여 세력이 뭉쳐 1955년 9월 창당했지만 뿌리는 한국민주당과 민주국민당이었다. 민주당은 5년 동안 자유당의 장기집권 기도와 온갖 탄압·횡포에 맞서 용감하게 투쟁했다. 평소 당 수뇌와 소속국회의원들은 이따금 “죽기 전에 정권 한번 잡아봤으면 원이 없겠다”고 푸념을 했다. 그런데 뜻밖에 3·15부정선거-4·19 학생혁명으로 황금 같은 기회가 왔다. 내각제개헌안이 통과되고 5대 민의원 선거에서 203명 중 170여명이 당선되는 압승을 거뒀다. 그러나 신·구파는 총선 다음날부터 파벌싸움을 재개했다. 내각제의 첫 총리는 장면이 선출됨으로써 신파가 승리했다. 그로부터 5개월간 양파는 장관수를 놓고 맞서 장 총리는 여러 차례 개각을 해야 했고 나중에 구파는 신당을 만들어 분가해 나갔다. 그 후 양파는 여·야당이 되어 싸움을 계속하다가 5·16쿠데타를 맞았다. 신구파의 파쟁과 여·야의 대립은 국정의 난맥과 표류를 가져왔고 끝내 군사쿠데타로 장면정권은 물론 정치판과 민주주의는 궤멸되고 만 것이다.

작년 17대 대통령선거에서 이명박 후보가 정동영 후보에게 무려 350만여 표차로 대승, 10년 만에 정권을 탈환했을 때 한나라당은 이 여세대로라면 18대 총선에서도 200석이 넘는 전체의석의 70~75%석권은 문제없을 것이라고 자신만만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지 한 달도 안돼 국회의원선거를 코앞에 두고 내분으로 당이 비틀거리고 있다. 지역구 후보공천과 관련 박근혜 전 대표계의 ‘계파죽이기·음모·기획공천’이라는 강한 반발속의 박 전대표의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는 발언, 이를 무마하기 위한 강재섭 대표의 불출마선언, 친 이명박 계를 포함한 수도권후보 55명의 이상득 국회부의장의 사퇴촉구, 이명박 계의 양대 기둥인 친형 이 부의장과 이재오 의원 간의 내분 등은 국민을 어지럽게 하고 있다. 이렇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가깝게는 당이 엄정공천 약속에도 불구하고 원칙에 어긋난 예외적 공천을 했기 때문이다. 비리 전력과 철새족 등을 공천하고 특히 원로 다선의원은 퇴진시킨다는 방침과는 달리 73세의 이상득 부의장(5선)만을 공천한 것 등이 문제가 된 것이다. 아울러 먼 원인은 당 지도부 이재오 의원, 박 전 대표 계 등도 오는 7월 전당대회에서의 당권장악을 지나치게 의식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대선서의 압승·대승에 따른 지나친 자만과 과신으로 공천도 당 운영도 지도부의 의도대로 쉽게 생각하고 운영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비주류건 누구이건 공천에서 탈락시켰으면 어떤 성적과 이유로 그렇게 됐는지 국민 앞에 분명히 알리고 반드시 약속대로 원칙공천을 했어야 했다. 낙천자들은 친박연대 무소속연대로 출마하는 등 한나라당은 모든 정당과 후보들에게 포위되어 있다. “200석 자신”은 뿌리째 흔들린지 오래다. 만일 이번 총선에서 원내 과반수를 얻지 못할 경우 이명박 새 정부의 나갈 길과 위상이 어떻게 될 것인지는 국민이 잘 알고 있다. 한나라당은 반성과 함께 겸손해야 한다. 노 정권과 상대당의 실수로 지지율이 올랐던 때는 이미 지났다. ‘안정론’을 외친다고 표가 저절로 몰려오지 않는다. 한나라당은 공천파동과 내분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고 반성한 후 너그러운 심판을 기다려야 한다. 아울러 이상득·이재오 의원 등은 더 이상 국민에게 우려와 의혹을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언론인·전 고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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