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상수 논설위원
정치를 ‘말의 예술’이라 했던가. 정권의 교체는 말에서 실감난다. 권력 주변의 말을 보면 정권의 철학과 방향이 감각된다. 권부의 말이 주시와 분석의 대상이 되는 이유다. 정권의 말은 한마디 한마디에 국가의 진운, 국민의 희비가 걸려 있다. 그래서 권력의 말은 독백이아니라 늘 보이지 않는 국민과의 대화여야 한다.

지금 세상은 이명박 정부의 말에 촉각을 곤두 세운다. 새 정권의 말을 통해 향후 5년을 예감하려는 때문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엄청난 조어(造語)가 양산되는 것이 한 특징이다. 인수위시절 ‘어륀지’ 논란이 그 발단이 됐다. ‘어륀지’ 논란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정권의 지향과 현실의 간극이 빚어낸 매우 상징적 사건이다. 지난 정권이 지나치게 거칠었다면, 현 정권은 도를 넘게 화려하다. 집중하지 않으면 따라잡기 어려울 만큼 화려한 말들이 쉴 새 없이 쏟아진다.

‘비즈니스 프랜드리(Business Friendly)’는 새 정부 정책의 방향성을 가늠하는 좋은 잣대라 할 만하다. 그러나 이후 ‘프랜드리’는 만능 키처럼 ‘∼프랜드리’시리즈를 파생시키고 있다. 진짜 프랜드리가 무엇인지 헷갈릴 정도다. 조각 과정에서 부자내각이다 뭐다 해도 야권의 공격을 받은 내각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화려한 캐치프레이즈를 내놓기도 했다. 베스트(best) 내각, 팀워크(teamwork) 내각, 글로벌(global) 내각, 블루오션(blue ocean) 내각, 사이트(site) 내각, 청백리 내각, 썰번트(servant) 내각이 그렇다. 정부 당국자가 기자들을 대상으로 용어를 해설해야 할 만큼 낯설다. 전투하듯 하루 하루 생업의 현장에 뛰어들어야 하는 많은 보통 국민들의 귀에 익기까지는 훨씬 더 많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할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은 지나치게 거침없어 탈이 됐다. 오늘은 또 무슨 파격이 나올까? 국민들은 늘 기대 반 걱정 반의 심정이었다. 때로는 요령부득의 정치적 수사(修辭)에 신물이 난 국민들에게 ‘이럴 수도 있구나’ 하는 신선함이 없지 않았지만 말이다. 온 국민이 지켜보는 생방송에서 젊은 검사들과 토론하는 것 자체가 낯설었거니와 ‘이쯤하면 막 가자는 거지요’하고 먼저 맞짱을 뜨자는 듯한 언표에 놀랐다. 취임 초인 2003년 5월 ‘대통직 못해 먹겠다는 위기감이 든다’는 깜짝 발언을 했다. ‘마지막까지 국정의 끈을 놓고 싶지 않다’며 스스로 추스르는 듯한 말을 한 것은 임기 후반 2006년 8월이다.

정치적·정서적 대척점에서는 그가 대통령의 품위와 품격을 훼손하고 있다고 공격했다. 파격에 익숙지 않은 적지 않은 국민들 또한 불안·불편을 느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일면 그의 거침없는 파격은 결과론적으로 권력과 최고권력자에 대한, 혹은 그 권위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혀 놓는 기여를 했다. 논란을 뒤로하고 노 전 대통령은 고향 봉하마을로 내려갔고, 그의 말은 더 이상 시비 대상이 아니다. 살아 있는 정권의 말에 집중하는 것이 국민의 본능이다. 정권의 말이 난해해지면 국민과의 소통이 어려워진다. 종잡을 수 없게 되고 불편해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느 날 공자(孔子)의 제자 자로(子路)가 옷을 화려하게 차려 입고 나타나자 공자가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강수(江水, 양자강)가 민산(岷山)에서 발원할 때 그 시작은 남상(濫觴)에 지나지 않았지만 강 나루에 이르면 배를 타지 않고는 건널 수 없는 큰 물이 된다. 물이 하류로 흘러내리는 동안 여러 냇물을 받아들였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그런데 지금 네 의복이 이렇게 화려하고 얼굴 빛은 자신감에 넘치니, 천하에 누가 감히 너에게 무슨 권고를 해주겠느냐”하고 말이다.

자로는 서둘러 옷을 바꿔 입었고, 공자는 다시 말을 이었다. “말을 부풀리는 자는 부화(浮華)한 자요, 행동에 분(奮)을 내는 자는 자랑을 즐기는 자요, 용모와 지혜가 있다고 해서 스스로 능력이 있다고 여기는 자는 소인배에 지나지 않느니라” 정치 권력의 말과 행동이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새 권부에서 쏟아지는 언사가 잘 차려 입고 한껏 폼을 잡으려던 자로의 태도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다만, 자로는 스승의 꾸짖음에 얼굴을 붉히고 황급히 그 화려의 옷을 벗어 던졌다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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