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 동 열

편집부국장 겸 경제부장
‘돈 선거’ 파문이 또 불거졌다.

예비후보자로부터 거액(4100만원)이 든 돈 보따리를 건네받은 측근은 적발 즉시 체포돼 구속영장이 신청됐고, 돈을 건넨 예비후보자는 공천권을 반납하고, 후보직을 사퇴했다.

“선거사무실 집기 구입 등을 위한 비용”이라고 불법 혐의를 부인했지만, 측근은 구속을 면할 수 없었다.

절묘하게도 4·9 총선 후보등록 첫날인 지난달 25일에 발생한 이 사건은 선거 정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야당에서는 “돈선거, 차떼기 구태가 또 자행됐다”며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고, 문제의 예비후보자를 공천했던 여당에서는 해당자를 제명처분까지 하면서 진화에 부심하고 있다.

선거 초반부터 ‘대형 악재’가 터지자 여당에서는 문제의 당사자가 공천과정에서 부적격자 논란이 불거졌던 인물임을 상기, “부적격자가 공천을 받게 된 내용을 조사해 해당행위가 밝혀지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뒤 공식선거운동이 본격화되자 요즘 신문에는 후보들의 광고가 줄을 잇고 있다. “앞으로 지역발전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할테니 (유권자들께서) 십시일반 정치자금을 지원해달라”는 후원금 모금 광고다. 후원금은 정치인들이 ‘검은 돈’을 받지 말고, 깨끗한 돈으로 밝은 정치를 하도록 하자는 의미에서 도입된 제도이므로 잘 살려 나간다면 선진 정치 문화를 여는데 기폭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광고를 보면서 기자는 “요즘 정치인들은 참 행복할 수도 있겠구나”하는 좀 엉뚱한 생각을 해봤다.

요즘 선거직 정치인들은 사실 돈 쓸 일이 예전보다는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공직선거법’이 허튼 돈 쓸 일을 아예 막아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디오카메라 등 최첨단 영상장비까지 곳곳에서 감시의 눈을 밝히고 있으니 잘못 실탄(선거자금)을 남발하다가는 당선은 고사하고 패가망신하기 딱 좋다. 이번에 ‘돈선거’ 파문을 일으킨 예비후보자도 선거구의 도로에서 현금이 들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비닐봉지를 건네는 장면이 선관위 단속원의 비디오 카메라에 찍힌 것이 단초가 됐다.

선거구민들에게 밥을 사는 것도 기부행위로 간주돼 엄격히 제한된다. 잘못하면 대접받은 사람도 최고 50배의 과태료를 각오해야 하니 보통 간이 크지 않고는 정치인으로부터 밥 한술 얻어 먹는 것도 생각지 못할 일이다.

식사비를 계산하지 않아도 되는 훌륭한 ‘명분’을 제공해주고, 선거비용도 일정 수준의 득표만 하면 다시 국고에서 돌려받을 수도 있으니 현행 선거법은 정치인들에게 정말 ‘고마운 법’이 아닐 수 없다.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마주치는 경조사의 축·조의금은 또 어떤가.

과거 정치인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상가집을 찾아다니고, 주말에는 선거구내 결혼식장에 거의 빠짐없이 발품을 팔면서 주머니를 털어야 했으나 요즘은 선거직 정치인이 봉투를 내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세상이 됐다.

그런데 정치인이 돈을 받는 것은 어떤가. 신문에 선전 광고를 내고 합법적으로 돈을 모금할 수도 있고, 정치인 본인이 경·조사를 당했을 때도 선거구민들로부터 정당하게 부조금 봉투를 받을 수 있으니 이렇게 좋은 꽃놀이 판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돈 쓸 일이 허다했던 옛날 정치인들이 본다면 “요즘 국회의원들이 돈에 관한한 정말 행복한 법을 만들어냈다”고 부러워 할 일이다. 그런데도 선거철만 되면 자꾸 ‘돈 선거’ 파문이 발생한다. 그렇게 쓸 돈이 많으면, 받는 것도 다 금지시키자는 차원에서 앞으로 정치인들 경조사에 축·조의금 봉투를 받는 것도 금지하는 법을 만들자고 하면 어쩌려고 그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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