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엔 선거 때가 되면 경로당으로 후보들이 찾아와 절하고 국밥집 불고기집으로 모시고 봉투도 돌렸지. 또 연설회하는 날 운동장에 가면 막걸리와 소주 마시는 재미, 친구들과 회포를 푸는 재미가 있었는데… 요즘엔 누가 나왔는지도 모르겠고 선전차 위에서 자기들끼리 춤추고 연설하지만 흥도 안 나고, 옛날에 참 좋았어…”

지난 주말 수도권 몇몇 지역의 선거분위기를 살피러 갔다가 식당에서 옆자리의 70대 후반의 노인으로부터 들은 얘기다.

귀경하는 도중 필자는 Q시 중심가에서 행인들에게 열심히 명함을 돌리며 인사하던 한 후보와 잠시 얘기를 나눴다. “요즘 과거와 같은 돈선거 시대는 옛날얘기라고 말하는 사람은 바보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향응, 특히 돈의 위력과 효과는 최고의 선거운동이지요. 얼마 전 이곳 유력한 모 후보가 조기축구회, 향우회, 동창회 등 여러 곳에 은밀하게 봉투를 돌렸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필자가 “물증이나 확증이 있는가” “공연한 마타도어(모략선전)가 아닌가”라고 묻자 그는 “참으로 속이 탑니다. 어찌나 감쪽 같이 돌렸던지, 준 쪽 받은 쪽 모두 꼬리를 감추니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물증만 제대로 찾으면 선거는 이긴 것이나 마찬가지인데…”하며 혀를 찼다.

대한민국의 헌정 60년간 부정선거의 양상을 보면 1950년대는 관권개입 막걸리와 고무신 돌리기 표 바꿔치기(換票), 1960~70년대는 관권개입 금품과 선물살포 흑색선전이, 1980년대는 관권개입과 금품살포가, 1990년대는 금품과 흑색선전이 주종을 이뤘다. 2000년대 들어와서는 금품과 검은 돈의 차떼기 모금 등을 피크로 대신 흑색선전이 유난히 기승을 부려오고 있는 추세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요즘 선거는 밋밋하고 딱딱하다. 지난 날 부정선거가 판을 치던 시절, 선거를 치렀다하면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동네마다 막걸리와 불고기 냄새가 진동하고 돈봉투가 횡행하고 강아지도 고깃덩이를 물고 다니고 선물주기와 온천·안마 관광 등으로 흥청망청했다.

정치가 나중에 부패하고 표류하건 선거판은 돈 향응 막걸리 선물돌리기가 판을 치는 불법 부정의 장이 된 것이다.

수년 전부터 각종 연설회는 TV토론으로 금품과 향응을 받는 자는 50배 과태료와 신고포상제로 허위비방의 흑색선전 등에는 엄벌 규정으로 일단 돈판 먹자판은 자취를 감췄다. 이렇게 해서 선거판은 차갑고 삭막하고 살벌하기만 하나 재미도 흥미도 없게 된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역대 국회의원선거가 각기 특징이 있었지만 이번 선거에도 기이한 모습들이 드러나고 있다. 첫째는 국정과제에 대한 이념차이, 보수와 진보 간의 대결구도가 없다. 둘째 정책경쟁 공약경쟁이 거의 없다. 모든 야당들은 한반도 대운하 개발을 최대의 이슈로 부각시키려고 공세를 펴나 여당과 청와대는 총선 후 국민공론에 맡기겠다고 피해 전선이 형성되지 않는다. 대신 한나라당 쪽의 골육상쟁만 한창이다. 낙천-탈당한 인사들이 친박연대 무소속연대를 결성, 엄연히 한나라당내 비주류의 수장인 박근혜 전 대표를 최대한 선전하고 마케팅 해 득표전략으로 구사하고 있는 점이다. 이쯤 되니 선거에 대한 국민의 무관심은 확산되고 후보들이 거리에서 아무리 외쳐도 모이지 않고 시큰둥한 반응이다. 하지만 선거는 재미로만 할 수 없지 않은가. 주권자인 국민은 민주주의 민주정치를 지키고 발전시켜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당장 선거에 대한 무관심을 벗어나 누가 그나마 어느 당이 더 믿음직하고 어느 후보가 더 능력 있고 성실한 가를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선거외면과 무관심은 책임 있는 민주시민의 자세가 아니다. 무관심과 삐딱한 자세로 장차 4년간 방황하고 표류하는 정치를 탓해봐야 헛수고일 뿐이다. 선거무관심은 국민에게 두고두고 짐이 될 것이다.

언론인·전 고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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