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기 석 강원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김기석 강원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민주주의 정치를 고민하는 연구자들에게 국민, 대중, 민심같이 애증의 갈등을 일으키는 존재도 별로 많지 않을 것 같다. 규범적으로 이들은 권력의 원천이요 권력자가 따라야 할 절대적 존재다.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정치는 결국 전제정치나 독재정치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무리 지독한 독재자도 표면적으로는 국민을 팔아 자신을 합리화하기 마련이다. 민심은 민주주의의 전제조건인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국민의 뜻 혹은 민심은 애매하기도 하거니와 반드시 옳은 것인지 의심받을 때도 있다. 때로 터무니없이 분위기에 휩쓸리기도 하고 사악한 선동가에게 현혹되기도 한다. 히틀러도 선거에 의해 집권하였고 국민의 지지를 가장하고 정치를 펼쳤지만 당시의 독일이 민주주의였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그런 냉혹한 역사적 사실들 앞에 정치철학자나 분석가들은 민주주의라는 제도의 규범적 우월성을 추구하되 어떻게 하면 우매한 대중정치의 병폐를 최소화할 것인가 고민해 왔다.

최소한 18대 총선거 결과는 대중의 우매함에 대한 염려가 자만임을 보여준다.‘안정 속의 견제’라는 절묘한 결과를 도출해 냈기 때문이다. 그것도 ‘우매한’ 정치권이 던져준 형편없는 여건 속에서 말이다. 명분도 별로 없는 해괴한 정당들의 난립과 하향식 공천의 뒤숭숭함 그리고 단 2주로 주어진 제한된 시간 속에서 마치 위대한 연출가의 기획처럼 이런 절묘한 결과를 만들어내리라고 예측한 소위 ‘전문가’는 한 사람도 없었다.

한나라당에 과반의석을 주고 소신껏 일해 줄 것을 주문했지만 오만하지 말라는 경고를 덧붙였다.

혹시 못난 정치인들이 그런 뜻을 곡해할까봐 이명박 정부의 때 이른 실정을 가져온 문제인사들을 대부분 낙방시키는 방점까지 찍어서 말이다. 정권과 국회의 과반의석을 줬더니 오만에 찌들어 국사를 그르치고 만 통합민주당에게는 채찍을 주면서도 한 번 더 기회를 줄 수 있다는 메시지를 곁들였다. 두 번의 선거를 통해 충분히 야단을 쳤으니 이제 정신을 차려 보라는 뜻일 게다.

강원도의 민심은 더욱 절묘하다. 수도권 민심은 한나라당을 선택했지만 강원도는 달랐다. 흔히들 이를 엇박자 표심이라고 폄하하지만 이는 강자에게 편승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젖은 안이한 분석일 수 있다.

오히려 이번 선거결과는 이제 강원도도 나름의 색깔을 가지겠다는 적극적인 의사표시로 해석해야 한다. 한나라당과 아류한나라당 일색인 영남의 민심과도 거리를 둔 것이 그를 웅변한다. 강원도가 영남권과 정서를 같이 한다는 그동안의 생각은 이제 버려야 할 듯하다.

영동 지역의 유권자가 모두 무소속을 선택한 배경에는 그동안 보내준 절대적 지지에 대한 응답이 보잘 것 없었음에 대한 섭섭함과 한나라당 깃발만 꽂으면 누구도 당선된다는 식의 오만에 상처입은 자존심이 도사리고 있다.

아마 그나마 강원도가 선호한 박근혜 전 대표를 푸대접 한 데에 대한 불만도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4년 내내 지역구를 소홀히 한 후보를 현역의원 대신 선택한 접경지역 민심을 접하고도 정신을 차리지 않는다면 이제 한나라당은 강원도민의 사랑을 다시 얻기 어렵게 될 수도 있다.

전체적으로 강원도의 이번 선거는 기존정당들에 대한 불만과 새로운 정당들에 대한 불신을 함께 표출한 것으로 봐야 한다. 강원도의 어려운 현실을 외면하는 정당과 정치인들에게는 더 이상 지지를 보내지 않겠다는 경고도 함께 곁들여서 말이다.

게다가 수적 불리함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인 다선(多選)의 날개까지 달아준 것을 감안하면 이번 선거에 승리한 당선인들은 이제 현실정치의 한계를 들어 강원도 의제를 관철하기 어렵다는 식의 변명을 늘어놔선 안된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위대한 민심을 확인한 이상 그에 분골쇄신으로 화답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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