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m를 훌쩍 넘는 소나무 숲이 선교장을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다.
봄 햇살이 가득 내리 쬐는 오후에 강릉을 대표하는 명승과 명품을 한꺼번에 만나는 기회를 가졌다.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에 깨어난 산수유는 노란 꽃망울을 활짝 피워 겨우내 움츠린 꿀벌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느라 분주해 보였다.

아흔아홉 칸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우와’하는 탄성이 나오는데, 첫 인상은 조용하고 단아함이 느껴진다. 효령대군의 11대 손이라니 따지고 보면 나의 친척집이네. 라는 생각에 내가 선교장의 안주인이라도 된 기분이다.

‘예전에는 경포호수를 가로질러 배로 다리를 만들어 건너 다녔다.’하여 선교장이라고 이름 지었지만 그 호수의 일부는 논이 되었고, 집 앞으로 도로가 생겨났다. 입구에는 인공연못을 파고 정자를 지어 활래정(황진이 촬영지)이라 이름 짓고 연못과 함께 경포호수의 경관을 바라보며 관동팔경을 유람하는 조선의 선비와 풍류들의 안식처가 되었다고 한다.

선교장을 바라보면 뒤편의 숲이 선교장을 든든히 지켜준다는 느낌이 드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뒤편의 숲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연륜이 느껴지는 20m를 훌쩍 넘는 키의 소나무들이 든든히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무심히 지나칠 때 몰랐던 소나무들이 주연을 빛내는 소리없는 조연이 되어서 선교장을 빛내고 있는 것이다. 이 소나무들 중 무려 24그루가 도지정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어 이 숲이 얼마나 소중한 우리의 자산인지 쉽게 알 수 있게 해준다. 거센 동해바다의 해풍도 막아주고, 신선한 공기도 만들어주면서 아울러 아흔아홉칸 기와집 선교장과 어우러져 자아내는 풍경이란 어디서도 느껴 볼 수 없을 것이다.

강릉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가보았을 선교장. 그동안은 아흔아홉칸 사대부 집을 구경하러 오셨다면, 이제는 다시 한번 찾아가 선교장 뒤편의 담장과 어우러져 서있는 솔숲을 한번 거닐어 봄을 권해본다. 따스한 햇살 내리쬐는 소나무 아래 앉아 과거로 한번 들어가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뒤편 노송의 숲과 활래정의 연꽃, 그리고 멀리 보이는 백두대간 사계절 변화의 모습을 바라보는 운치는 천하제일이라고 하겠다.

이순실·동부지방산림청 숲 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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