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8년 벨지움에서 처음 시작한 이후 100년 넘게 유럽의 많은 국가에서 시행 중인 비례대표제의 취지는 사표(死票)방지와 직능대표들의 의회진출이다.

우리나라에서 비례대표제가 처음 실시된 것은 5·16쿠데타 세력에 의해 1963년 11월 26일 6대 총선 때였다. 쿠데타직후 구 정치인들을 부정부패를 일삼는 구악이라고 지탄했던 군부는 각계의 전문가 기능인들을 당선시켜 정치를 정화하고 국회와 정치의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함이라고 명분을 내세웠다. 처음 야당은 비례제가 “임명제 국회의원으로 야당을 약화시키고 탄압하기 위한 게 아닌가” 하고 크게 경계했다. 그러나 얼마 후 야당은 내심 쾌재를 불렀다. 오래전부터 정치자금을 조달·염출할 길이 없어 가난한 야당에게 자금마련의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각 분야에서 명망 있는 인사, 또는 당 소속 정치인 중에서 당에서 정한 헌금을 낼 경우 공천을 주기로 했다. 1963년 이래 9대·10대 국회 7년간을 제외하고 지금까지 37년간 실시해오고 있는 비례후보의 가격(헌금)은 선거를 거듭할수록 급등했다.

사실 예나 지금이나 야당이 아무리 자금난을 겪는다 해도 거액-돈을 받고 후보공천을 하는 것은 선거법·정치자금법을 위반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헌금 또는 특별당비로 둔갑시키는 것을 사정기관도 대다수 국민들도 인정했다.

지금까지 야당의 경우 선거 때마다 비례대표 공천에 관련한 숱한 시비가 불거졌고 선거 후에도 계속 논란이 이어졌다. 시비는 위법행위와 연관된다. 즉 비례후보 시비와 논란의 핵심을 돈을 받고 공천을 해주는 대가성 공천과 당 수뇌와 일부 지도층이 소개비, 수수료를 은밀하게 챙긴 것. 문제는 소개비 수수료가 때로는 당에 낸 것과 같은 거액이라는 점이다.

한마디로 은밀하게 챙긴 것은 모두 착복·독식해 말썽이 빚어졌다. 1990년대 총선이 끝난 후 야당인 민주당이 떳떳하게 밝힌다며 비례후보들의 헌금내역을 공개했으나 반응은 싸늘했다. 이것이 비례후보가 낸 돈의 전부라고 믿는 당원과 국민은 별로 없었던 것이다. 민주당 뿐이랴 역대 야당의 지도자들 상당수가 당운영자금 조달이라는 명분아래 공천관련 검은 돈을 은밀하게 챙겼다는 얘기는 정가의 정설로 전해져오고 있다. 요즘 며칠째 일부정당이 18대 총선서 비례후보의 돈거래 돈공천 허위경력자 공천 논란으로 국민을 어지럽고 우울하게 하고 있다. 나이도 경력도 일천한 친박연대의 비례후보 1번인 양정례 당선자, 학력 경력을 속이고 전과를 누락한 혐의로 구속된 창조한국당의 이한정 당선자, 주가 조작에 따른 증권거래법 위반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통합민주당의 정국교 당선자 등의 돈 관련 사실들이 꼬리를 물고 있는 것이다.

관련정당에서는 수백만원에서 1억원 정도의 헌금, 특별당비를 받았다는 것이 6억~15억을 받았거나 빌렸다는 해명으로 도시 종잡을 수 없다. 물론 이들의 혐의는 검찰의 수사와 재판을 통해 가려지겠지만 이 정도의 설왕설래만으로도 신성한 국민의 대표직-국회의원직의 명예를 훼손·실추시킨 것을 감안하면 당선을 반납 자퇴하는 게 마땅하지 않은가.

검찰의 신속하고 성실한 수사를 통해 이들의 불법·부도덕행위가 가려져야 하고 특히 각당 수뇌부 중 만의 하나 이들로부터 수수료 명목으로 챙긴 것이 드러날 경우 의법처리는 물론 정계를 떠나야 할 것이다.

이성춘 언론인·전 고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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