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일섭
국민건강보험공단 강릉지사장
일찍 남편과 사별하고 갖은 고생을 다하며 아들을 키워왔던 노모가 몇년전 두번째 중풍으로 쓰러지면서 치매까지 찾아와, 아이처럼 변한 어머니를 극진히 보살피는 장애인 아들의 사연이 보도되었다. 얼마전 모 방송국 TV에서 소개된 장애 아들의 노모에 대한 사모곡 내용이다. 그 아들은 결혼도 하지 못하고, 어머니가 아프면서 집안 일과 바깥 일을 병행하면서 정말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가슴 아픈 사연이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턴가 저출산과 노령화가 사회의 화두거리를 차지하였고, 급속한 고령화는 예기치 못한 사연들을 우리 앞에 쏟아내고 있다. 정부에서 추진하는 효자보험, 아니 다섯번째의 사회보험이라는 노인장기요양보험 신청과 접수가 지난 15일부터 전국에서 시작되었다. 그동안 차마 외부로 들어내지 못하고 냉가슴을 앓던 각 가정의 큰 고민거리를 이제 사회가 나서게 된 것이다.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정말 축하할 일이다. 그러나, 솔직히 축하에 앞서 막연한 두려움과 막중한 책임감이 나를 더 짓누르고 있다는 고백을 드리고 싶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은 전국적으로 65세 이상 노인인구의 약 3.1%정도만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수혜자(등급판정1~3등급)가 건강보험과는 달리 모든 가정이 아니라는 태생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건강보험 가입자면 누구에게나 부과되는 4.05% 장기요양보험료에 대한 추가부담을 국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냐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또한 신청자의 판정등급과 탈락자에 대한 제도불신의 문제이다. 왜냐하면 5등급 중 수혜를 받을 수 있는 주민은 1~3등급이며, 그 중 1~2등급만 시설 입소가 가능하고 3등급은 재가서비스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혜에서 탈락한 4~5등급 가정에 대한 불만을 설득하는 것도 공단에 주어진 몫이다. 제도 시행 초기인만큼 시설 인프라에도 문제점을 안고 출발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각 시·군·구마다 시설이 편재되어 있고, 도시냐 농촌이냐에 따라 재가서비스 제공기관에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사실 모든 것이 예산이다. 지난해까지 우여곡절 끝에 법안이 통과되었고, 그동안 이미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외국 선진사례를 심도있게 검토하였고 벤치마킹을 하였다. 시행 첫해부터, 일본처럼 거의 모든 신청자(4등급 이하 경증대상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면 큰 불만은 없을 것이나 예산이 문제이며, 앞서 언급한 모든 가정에 부과되는 4.05%의 보험료와 급여확대를 위해서는 그 이상을 추가부담할 수 있다는 국민적인 이해와 지지가 필요한 실정이다. 앞으로 수급 대상자는 인구의 급속한 고령화와 핵가족화 등 가족 구성간의 문제, 유병기간의 장기화 등의 문제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노인 장기요양 보험의 태동이 그동안 환자 가족들이 겪어왔던 고통과 가정파탄의 충격을 어느 정도 완화시키는 진정제의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다만, 이번에 시작하는 노인장기요양보험에 대한 국민들의 지나친 기대감과 욕구분출은 전통적인 효사상이 남아있는 우리나라의 가족문화와 이 제도의 조기정착을 위해서도 바람직스럽지 않다. 시범사업에서 수혜 등급판정을 받고도 집안의 어른을 타인에게 부양하게 할 수 없다는 우리의 아름다운 미풍양속을 가진 가정이 다수 있듯이, 가정에서 1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그렇지 못할 부득이한 경우 국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대책을 마련하고 이 제도를 국민들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스럽지 않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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