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옥 문화 커뮤니티 금토 대표

▲ 유현옥

문화 커뮤니티 금토 대표
소설가 전상국의 작품 가운데 ‘사이코 시대’가 있다. 동서문학이 시상한 제1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작품은 절대적인 힘에 놓인 인간이 스스로 위축되고 자기중심의 소시민의식을 갖게 되는 현상을 은유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제목이 주는 포괄적 의미처럼 사이코시대에 살고 있다. 또한 신문과 방송 등 미디어는 날마다 이를 증명해 보인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묻지마 범죄’에 대한 보도이다. 속칭 ‘묻지마 범죄’는 무동기 범죄로 불리며 범죄자가 뚜렷한 범죄동기 즉, 특정 원한이 없는 대상에게 위해를 가하는 양상을 말한다. 이처럼 아무런 원한관계가 없는 사람으로부터 피해의 대상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사람들을 공포스럽게 한다. 이런 유형의 그 범죄 양상은 잔혹한 경우가 많아 뉴스를 접할 때마다 두려움을 갖게 된다.

안양에서 발생했던 혜진이와 예슬이의 유괴살해사건의 범인이 우리에게 준 충격이 사람들의 가슴에 남아있는 시점에서 유사범죄는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심정으로 사람들에게 강하게 인식된다.

최근 양구에서 일어난 여고생 살인사건(강원도민일보 4월 28일자 보도)은 이러한 불안감을 심화시키는 사건이다. 우리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이같은 유형의 범죄 확산이 우려되는 현실에서 이 사건은 도내 언론이 일제히 주요 뉴스로 보도하고 있다.

강원도민일보는 4월 28일자 사회면(5면)에 ‘정신질환 30대 여고생 살해-“아무나 죽이고 싶었다”이유없이 범행’ 제하의 사건기사 보도와 춘천권 지역면(18면)에 관련 기사를 싣고 있다. 이어서 29일에는 사회면 톱기사로 ‘묻지마 범죄 잇따라 불안 확산-춘천서 기분 나쁘다 폭력·방화 이틀 새 3건’ 제하의 기사와 용의자구속 속보를 이어서 실었다.

이 일련의 기사를 읽으며 다시 ‘사이코 시대’를 떠올리게 된다. 마음속에 억압이 느닷없는 폭력이나 자해, 자살로 분출되는 일들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 누구에게나 이런 억압과 광증이 내재되어 있고 언제 터질지 모를 것 같은 불안감을 갖는 것이 이 시대의 내면이기도 하다.

사람간의 단절과 소외가 가져오는 어두운 면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현상은 때때로 미디어가 증폭시키고 또 모방의 동기를 제공한다. 사회적 관심(미디어의 관심)을 받는 범죄가 발생하면 잇따라 모방범죄가 발생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때문에 범죄와 관련된 사건을 보도하는데 있어 좀 더 냉정함을 필요로 한다. 이번 기사도 유사범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주기에 적합하지만 몇 점을 간과하고 있다.

첫째, 정신질환자로 보이는 사람이 저지른 사건을 계기로 유사 사건을 하나로 묶어 사회현상으로 보도한 후속보도는 다소 지나쳤다는 판단이다. 기사의 내용이 오보이거나 허위가 아니지만 제목의 감도가 주는 사회적 불안으로 해석하기에는 각각의 범죄 성격을 무리하게 하나로 묶었다. 살인사건과 연결지어 ‘불안확산’으로 확장하고 있는 이 보도는 오히려 과도한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보도는 과장의 문제와 함께 정신질환자의 범죄로 단정하는데서 오는 위험성이 존재한다. 보다 근본적 범죄원인을 간과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 사실보도가 때때로 사회적 편견이나 가해자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앞서 양구 사건의 경우 용의자가 간질과 정신지체 3급임을 밝힘으로써 지적장애인의 소행임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후속보도에서는 피의자가 마약 사용자, 또는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보도, 모두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르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표현은 범죄의 경중을 떠나 피의자의 인권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관련 증세를 갖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가져온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이는 자주 언론중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어찌보면 양날의 칼이기도 하다. 하지만 선의로 휘두른 칼에 옆자리에 앉아있던 사람까지 피를 흘리는 일이 없도록 앞뒤를 돌아볼 일이다. 범죄를 저지르는 상황이 제정신인 경우는 거의 없다. 범죄를 과도하게 정신병자의 소행으로 모는 것은 오히려 범죄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다.

유현옥 jadey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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