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상빈 강릉 아산병원 정신과 |
예를 들어 영화 속에서 가족을 은밀히 살해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어떤 등장인물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만약 그가 정말로 완전범죄를 계획하고 있다면 과연 그는 어떤 방법을 사용하게 될 것인가? 영화에서 흔히 보게 되는 방법은 가족이 매일 먹는 음식물에 몸에 해로운 유독물질을 조금씩 섞어서 주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피해자는 전혀 상황을 알지 못한 채 서서히 죽어가게 될 것이다.
이제 영화 속 상상의 세계에서 돌아와 보자.
놀랍게도 이런 영화 같은 상황이 우리의 현실에서 사실로 등장하고 있다. 요즘 조류독감의 위험에 이어 광우병에 대한 불안까지 연달아 터지면서 우리사회에 심각한 먹거리 공포증이 확산되고 있다. 우리는 원래 식사를 하면서 자신의 입으로 들어가는 수많은 음식물들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라고 무의식적으로 가정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음식물들에 포함되어 있는 환경호르몬, 중금속, 농약 등 여러 가지 유해물질과 전염병을 일으킬 수 있는 병균의 위험에 대해 알기 시작하면 일상생활이 점점 불편해지고 위축되기 시작할 것이다. 즉 마치 의처증이나 의부증과도 같이 자신이 먹는 음식물에 대해 의심을 하기 시작하면 겉잡을 수 없는 나락에 빠져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의심은 품으면 품을수록, 그리고 의심에 따라 확인하는 행동을 하면 할수록, 줄어들기는커녕 반대로 점점 더 커지는 이상한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먹거리는 생명을 연장시키는 연료이기 때문에 음식물에 들어있는 극소량의 유해물질을 오래 동안 섭취하게 되면 영화 속 완전범죄 살인처럼 자신은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서서히 죽어가는 상황과 유사하게 될 수도 있다.
지금 우리사회에서는 광우병이 발생할 수 있는 객관적인 확률적 위험수치보다 광우병에 대한 공포증이 더욱 문제가 되고 있다. 어떤 식으로 이 상황이 종료될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현재 이 문제는 차분한 이성보다 격앙된 정서에 더욱 연결되어 있다. 일단 대개의 사람들은 향후 모든 먹거리에 대해 더욱 의심을 키우게 될 것이고, 음식물의 선택에 있어 좀더 방어적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육식보다는 채식이나 해산물을 선호하게 될 것이고 수입소고기나 닭고기보다는 돼지고기와 한우를 더욱 찾게 될 것이다. 혹자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냄비근성에 신뢰를 보내며 좀 시간이 지나면 이번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수입육을 먹을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로 광우병의 위험이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면, 아무리 깊은 망각이 있었더라도 미래에 단 한 사람의 광우병 신규 발병자로 인해 모든 공포는 삽시간에 귀환하게 되고 광우병의 공포는 더욱 크게 증폭되어 재발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