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준식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많은 사람들이 단지 외부 경제환경이 호전되고, 대기업들이 살아나면 우리 경제도 숨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와 환상에 젖어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의 근저에는 대기업들의 이익을 지키는 데 급급해 온 경제관리 정책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대기업에 종속되거나 유통망에 편입된 중소기업들은 모기업을 위해 납품단가 인하와 출혈경쟁을 강요당하는 상황에 몰렸다. 힘 있는 대기업들과 이익집단들은 중소기업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그들의 내부문제를 해결하는 손쉬운 방법에 급급한 나머지 중소기업들과의 동반 성장과 상생의 길을 외면해 왔다. 국내에서 성장의 기회를 찾을 수 없는 중소기업들의 대규모 해외유출이 가속화되었고, 이는 곧 국내 일자리와 내수감소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중소기업들의 희생 위에서 성장한 글로벌 기업들과 국내 시장과의 연계성은 시간이 흐를수록 약화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결국 수많은 중소기업들에 의존해 온 서민경제의 소득악화와 고용불안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으며, 경제와 사회 양극화를 가속화시켜 경제사회 발전의 원동력을 크게 잠식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활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강력하고 건강한 중소기업의 경쟁 생태계를 육성해야만 한다. 중소기업을 강조하는 이유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중소기업은 우리 사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기업가 정신의 최대 공급자들이며, 고용창출의 견인차이고, 서민경제의 지렛대이기 때문이다. 강력하고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의 존재는 이들의 손과 발에 자신들의 경제활동을 의존할 수밖에 없는 대기업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글로벌 기업들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이들의 대부분은 강력한 중소기업들의 연합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들과 지속 가능한 상생의 네트워크를 잘 구축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진 대기업들만이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궁극적인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

중소기업의 발전은 사회 양극화와 분열의 위기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 경쟁력 있는 견실한 중소기업들은 대기업들에 비해 훨씬 높은 고용창출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이들의 성장과 발전은 곧 건강한 서민경제를 뒷받침하는 일자리의 확대를 의미한다. 반면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들이 좋은 일자리를 제공할 수 없는 사회에서 일자리와 고용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중산층의 붕괴와 사회 양극화를 저지하는 데 중소기업의 발전은 필수적이다. 한 사회가 안정속에 혁신과 발전을 거듭하고, 사회적 역동성을 유지하는 데 중소기업만큼 더 효과적인 수단은 없다.

우리 사회는 국내외적으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생명줄을 좌우하는 식량과 에너지 가격이 끊임없이 상승하고 있다. 사회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으며, 대기업들의 고용창출은 거의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소기업들은 더욱 절박한 생존의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을 육성하고, 이들의 역할을 보존하는 것은 우리의 생존을 좌우하는 문제일 수 있다. 중소기업들이 강한 국가는 웬만한 위기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경제의 저력이 그 만큼 단단하기 때문이며, 사회의 힘이 그 만큼 건전하기 때문이다. 강한 중소기업을 육성하는 것은 한국경제의 선진화와 사회 발전의 실마리일 뿐 아니라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점이 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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