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지현 춘천교대 교수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OECD국가 중 최하위였던 2005년도의 1.08명에서 2007년도에는 1.27명으로 늘어나서 증가추세에 있다고 한다.

정부는 출산율 증가가 그간의 활발한 정책 덕분임을 자평하며 올 초에 저출산 부분에만 약 4.7조원을 쏟아 부을 계획을 수립했었다. 출산율이 일시적으로 높아진 것은 순전히 정책 덕을 본 것은 아니다. 높아만 가는 물가에 얇아지는 지갑을 들고 호언장담하는 정부를 믿고 덥썩 아이를 낳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이를 둘 이상 낳고 싶지만 먹고 살기 위해서 자식에 대한 욕구를 희생하는 것과 먹고 살기는 힘들더라도 기왕이면 좋다는 해에 아이를 낳아보려는 생각은 분명 상관이 있을 것이다.

정부의 대대적인 정책과 홍보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아이를 낳고 기르는 사람에게 피부로 와 닿는 것은 별로 없으며, 낙관적인 전망에도 불구하고 출산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확실한 증거도 없다.

간혹 저출산 문제를 여성의 고학력·사회진출 증가의 탓을 하는 무지한 사람들도 있으나, 모든 여성들에게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만 많이 낳으라고 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저출산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중복되고 집중되어 개인의 희생을 담보로 한 취약한 부분에서 터진 것이다. 흔히 저출산·고령화를 같은 선상에서 놓고 논의를 하나 고령화는 저출산의 결과 중 하나이지 원인은 아니다.

아이를 적게 낳는 첫 번째 이유는 노동시장에서 여성이 결혼·임신·출산·육아는 학력을 불문하고 아직도 매우 불리한 조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북아메리카의 인디언들은 아이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이를 꽁꽁 묶어서 엄마가 일할 때 옆에 세워 놓거나 심지어 벽에 걸어놓기도 했다. 이는 유사시에 아이를 데리고 빨리 도망치거나 동물의 위협에서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육아휴직을 해도 월 30∼40만원 내외의 돈으로는 노동의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아이를 안심하고 낳아 기를 수 있는 노동시장의 여건이 조성된다면 정부의 출산 보조금이 얼마이든 상관없이 아이를 더 낳을 수도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가정에서의 육아가 아직도 여성의 몫으로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는 것이다. 방학 때마다 시행하는 교사연수에 오신 선생님들을 첫 날 만나면 대부분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있다. 이유인즉슨, 남자 선생님들은 전날 와서 친구들과 거나하게 술을 한잔 걸쳤기 때문이고 여자 선생님들은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씩 걸리는 연수 기간 동안 가족들이 먹고 입을 것을 다 준비해놓느라고 밤을 새우고 와서 그렇다고 한다. 삼성경제연구소가 2006년도에 아무리 보육지원을 강화해도 양성평등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저출산 문제의 해법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은 것은 신빙성이 있다.

그 외에 저출산의 세 번째 이유를 들자면, 임신·출산·육아에 드는 실질적인 부담과 고비용의 문제이다. 사교육비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 육아는 ‘숨겨진 가사노동’으로 너무나 많은 신체적·경제적·정신적 희생을 필요로 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엄마가 육아와 수유를 위해 직장을 그만두면 GNP는 부정적으로 측정되지만, 아이의 복지지표는 올라간다는 von Weizsacker의 지적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먹고 살기 위해서 부부가 함께 벌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에 미미한 지원 정책을 내밀며 아이를 더 낳아서 GNP를 높이고 노인을 먹여 살릴 노동력을 제공하겠다는 생각은 순전히 공권력으로서의 출산 조절정책이다. 지금이라도 계층별로 실질적인 지원책을 절실하게 모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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