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석 강원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쇠고기 문제로 세상이 시끌해지면서 필자의 마음 속에도 찜찜한 구석이 생겨났다. 쇠고기와 관련한 이런저런 글들을 읽다가 문득 옛 일이 떠오른 것이다.

어느 글에서 미국도 1993년경부터 1997년까지 소에게 아무런 의식없이 동물성 사료를 집중적으로 먹였고, 비록 미국에서 광우병 소가 발견된 것은 2000년대에 들어서지만 이 때 집중적으로 동물성 사료를 먹인 소들 중에서 광우병 인자인 프리온 단백질을 가진 소가 있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것이었다. 몰랐을 뿐이지…….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기간은 필자가 미국에서 열심히 사골과 소꼬리를 고아 먹던 시절이다. 당시 미국에서는 현지인들이 먹지 않는 사골과 꼬리 같은 소위 특수부위들이 헐값에 한국인 전용상점에서 유통되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지금 기억에 꽤 큰 비닐봉지에 가득 담아 10달러 정도를 받았던 것 같다. 가난한 유학생에게 이는 매우 유혹적인 영양식이었다. 당시 한국에서 사골이나 소꼬리를 한 번 고아서 국을 해먹으려면 7만∼8만원은 족히 들었을 테지만 미국에서는 10,000원(당시 환율은 800원 내외였다)어치만 사면 1주일 식량이 해결됐다.

특히 아내가 남편 공부 뒷바라지 하느라 직장생활을 하고 있어서 제대로 밥해먹기 곤란한 때마다 김치만 있으면 한 끼 뚝딱 해결할 수 있는 냉장고의 곰국을 애용하곤 했다.

큰 아이를 낳은 아내를 위해 해산간 하러 오신 장모님도 산모한테는 그저 사골이 최고라면서 열심히 아내에게 먹이시곤 했었다.

그렇다면 나와 가족은...?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왠지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운 것 같기도 하고 최근 조금만 오래 서 있어도 자꾸 앉고 싶어진 것도 혹시... 등등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미국에서 광우병 소가 발견된 건 세 마리가 전부라는 둥, 로또에 당첨되고 집에 가다가 또 사서 당첨될 확률보다 낮다는 둥 소위 과학을 아신다는 분들의 조언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물론 소위 ‘사회과학’을 하는 필자 스스로도 확률의 합리성을 모르는 바 아니고 평소에도 확률을 중요한 판단의 기준으로 삼고 살아가긴 하지만 일단 내 가족의 생명문제가 되자 그런 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맨 처음 필자가 한 행동은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큰 아이에게 사골국을 많이 먹였느냐고 물은 것이다. 아내의 대답은 “애가 싫어해서 못 먹였다”는 것이다. “휴...” 그렇다면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야 자기 삶을 위해서 남의 나라가서 사골국 먹었지만 아이들은 죄 없는데 하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지금 국민들이 이명박 정부에 대해 괘씸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거다. 앞으로도 필자는 오랫동안 찜찜한 마음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지 10년도 훨씬 더 지났지만 지금도 한강다리를 건너거나 건물지하에 들어가면 스물스물 불안감이 일듯이 말이다. 그런 찜찜함이 일상 속의 식탁에, 그것도 자식들한테까지 스며드는 것은 정말 참지 못할 일이다. 필자야 자기 선택이었으니 하소연할 데도 없지만 정부 잘못으로 그런 상황이 강요된다면 이는 불쾌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아이들 손잡고 촛불집회장에 나오는 부모들 심정이 그렇지 않을까.

일반 국민이 정치와 정책의 디테일을 다 아는 것은 필요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 국민들이 이명박 후보의 모든 것을 자세히 알았다면 그렇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지 않았을 수도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아쉬움이라는 스크린에 청계천과 교통체계 개선으로 표상되고 ‘경제’와 ‘능력’으로 포장되어 비친 허상을 진실인 양 믿었기 때문에 몰표를 던진 것일 수 있다.

그러니 제발 국민들이 몰라서 저항하는 것이라는 식의 오만함은 버리길 바란다.

유권자도 몰라서 대통령 만들어 주었으니 물러달라고 우길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소통은 통절한 자기반성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지 국민을 무식쟁이로 모는 태도로는 어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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