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에디냐

갈바리의원 원장
‘지금 가지 않으면 못갈 것 같아, 아쉬움만 두고 떠나야겠지, 여기까지가 우리 전부였다면, 더 이상은 욕심이겠지, 피할 수 없는 운명 앞에 소리 내어 울지 못하고, 까만 숯덩이 가슴안고 삼켜버린 사나이 눈물, 이별할 새벽 너무 두려워 이대로 떠납니다.’

‘사나이 눈물’이라는 이노래는 갈바리호스피스에 입원해 계시던 H님이 색소폰 연주 봉사자가 왔을 때 본인이 듣고 싶어 신청했던 노래이다. H님은 공직에 계시다가 퇴직하고 나서 1년 후 췌장암에 걸리셔서 3년여의 투병생활 끝에 갈바리호스피스로 오신 분이다.

첫인상이 차고 냉정해 보여 다가가기 어려워 보였는데 친밀감이 형성되면서 알고 보니,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잘 표현할 줄 모르는 분이셨다. 집에서도 아내와 딸들에게도 항상 무뚝뚝하고 무심한 모습만 보여줘 가족 모두 남편과 아버지에 대해 서운하고 섭섭한 감정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위의 노래 가사에서 느껴지듯이 H님은 ‘사나이’와 ‘남자’로 키워졌고 그렇게 성장을 하였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잘 모를 뿐 그 마음 안에 사랑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상황 어떤 처지에서도 ‘남자’이고 ‘사나이’여야 했기에 자신의 고통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참아 내실 뿐이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그러한 아빠의 성품에 대해 설명을 하고 아빠를 보다 더 잘 이해 할 수 있도록 중재 하였다.

가족과 주위의 우려와는 달리 H님은 자신의 현실을 잘 직시하고 준비해 오신 분이셨다. 자신의 사후를 대비하여 집에서 살림만 하던 아내가 취미생활과 사회 활동을 잘 할 수 있도록 운전면허를 따게 하였고 갈바리호스피스에 입원한 뒤에는 아내에게 자동차 열쇠 증정식도 가졌다. 열쇠를 받던 날 그 부부가 자축하는 자리에서 나도 축하의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었다.

어느날 대화중에 한 번도 남편으로부터 ‘사랑한다’는 말을 못 들어 봤다는 아내를 위해 H님은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사랑합니다. 앞으로 더욱 더 사랑하겠습니다” 라고 고백을 하였다. 그리고는 “함께 살아오면서 부족한 점도 많았지만 함께 살아준 시간에 대해 감사하고 고맙다”고 눈시울을 붉히셨다. 아내는 웃음 반 농담 반으로 “수녀님 강요 때문에 억지로 고백한 것이 아니냐”고 애교 섞인 투정을 부렸지만 나는 그것이 H님의 진심에서 나온 고백임을 믿는다.

H님은 그렇게 갈바리 호스피스에 40여일 입원해 계시는 동안 저녁노을이 하늘을 아름답게 물들이듯이 자신의 삶을 잘 마무리 해 가셨고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운명하셨다.

갈바리는 예루살렘의 북쪽에 위치한 언덕이며 예수님이 십자가형을 받았던 장소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계실 때 그 십자가 아래에서 지켜 본 이들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몇몇 여인들, 그리고 사랑하는 제자 요한이 있었다.

십자가 아래 서 있었던 그 작은 무리의 사람들…. 그 작은 무리의 사람들이 Little Company of Mary(마리아의작은자매회) 회원들이고 그 정신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Greater Company of Mary이다.

오늘도 나는 갈바리를 거처로 삼아 임종의 고통 속에 있는 이들의 말 못할 고민과 두려움, 고통, 그리고 외로움을 함께 나누는 동반자로서 그들이 영원의 문턱에 이를 때까지 동행하며 벗이 되어주고 있다. 갈바리호스피스에 오신 분들이 한 분 한 분 영원의 다리를 건널 때 마다 그들을 배웅하면서 인생의 마지막 시간동안 그분들과 함께 나눈 추억을 간직하고 미래에 다가올 나의 죽음 또한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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