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재학 시절인 80년대 초중반, 이른 아침 학교 정문 언저리는 언제나 그랬듯이 전날의 혼미스러움을 그대로 보여주곤 했다.

매케한 최루가스의 냄새와 조각난 보도블럭, 깨어진 채 흩어져 있는 병조각들로 늘 어지러이 뒹굴고 있는 모습에, 친구들은 그랬다. “하루라도 그냥 지나가면 왠지 한끼 굶고 가는 것 같다”고 말이다.

군사독재 타도 및 민주화를 외치며 전국이 늘 시위의 현장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감하는 시대에 나는 대학시절을 보냈다.

그 때를 생각하면 가슴아픈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대학 1학년때 휴학을 하고 군입대를 하겠다며 떠난 친구의 가족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달려간 곳은 경찰병원 입원병동이었는데,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많은 입원환자들 모두가 화염병 투척으로 인한 화상환자라는 친구의 말에 충격을 받고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한동안 멍하니 바라만 보고있었다.

화염병을 던진 자도, 시위대를 막느라 화상을 입은 이들도 모두가 이 땅의 젊은이들인데 무엇이 그들을 서로의 적이 되게 하여 그리도 커다란 아픔의 상처를 주었던가 하는 생각과 평생을 화상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만 하는 친구의 모습에 가슴이 시려옴을 느끼며 친구와 어머니를 붙잡고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마음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이제는 각종 시위현장에서 사라져버렸는가 싶었던 ‘화염병 시위’가 얼마전 근로자 노동시위현장에 또다시 등장했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20여년전의 가슴아픈 기억이 떠올라 상념에 잠기게 된다.

시위문화의 형태가 대학가에서 근로·노동의 현장으로 확산돼 가면서 집단 및 조직의 이익과 요구사항을 관철시키기 위한 지나친 과격 행위들로 인해 많은 사회적인 문제점들을 양산해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시위 과정에서 사용되어진 많은 시위도구들 중에서 ‘화염병’으로 인한 엄청난 폐해는 던지는 자나 그들을 막는 자나, 시위현장을 지나는 시민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평생의 한과 고통을 준다는 것을 우리들 모두는 다시한번 인식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집단과 조직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시위현장에서 ‘화염병’이 또다시 사용되어 진다면 그동안 한결 성숙되어진 민주적인 시위문화가 이제는 정말 복구되어지지 못할 상황으로 곤두박질 쳐질 것 같아 가슴아프기 그지없다.

정당하게 요구사항을 관철시킬 수 있는 법적·제도적 통로는 얼마든지 열려있다고 본다.

과격하고 물리적인 시위행태는 우리들 모두에게 불행을 가져오게 하는 것임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정말이지 우리들 앞에 ‘화염병’은 다시는 나타나지 말아야 한다.

박준규 <속초YMCA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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