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뉴욕 한인교포 2명과 평양을 다녀왔다. 동행한 교포들에겐 비즈니스가 주목적이었지만 나는 관광을 위해 7박8일간의 방북단에 합류했다. 모처럼 금단의 문, 북한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왔다는 것이 기뻤다. 미국에서도 북한 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북 ‘통천’이 내 고향이라고 전하니 관광 일정에 포함시켜 주었다. 기대하지도 않았던 고향을 방문했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강원도 관광길은 방북일정 중 가장 마지막 코스였다.

먼저 백두산 장수봉에 올라가고, 평양에서 골프치고 주변의 여러 관광지를 참관한 후 찾은 곳이 분단의 땅 북강원이다. 차로 황해도 사리원에 갔다가 원산으로 방향을 돌려 고향 통천까지 갔다.

물론 너무 어릴 때 떠나 고향에 대해 기억이 나는 것은 없다. 그러나 1박2일 일정으로 통천의 한 여관에서 하루 밤 묵으며 고향땅을 밟은 감회는 아직도 새롭다. 아마 통천은 새로운 관광개발을 목적으로 외국인의 방문을 허용하는것 같았다. 나는 북강원 통천군 계곡리에서 태어나 4살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통천은 고 정주영 현대 회장의 고향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고향뿐 아니라 백두산 정상도 올라가 볼 수 있었다. 이것도 운이 따랐다. 백두산에 가려면 평양에서 삼지연까지 비행기를 타는데, 날씨관계로 1년 중 경비행기가 뜨는 날이 적어 백두산관광이 무척 어렵다고 한다.

특히 고향 ‘통천’의 유명 관광지인 진흙탕(북에선 ‘감탕’이라고 부름) 속에 들어갈 때는 안내원조차 “박 선생은 처음 조국에 오셨는데 정말 운이 좋으시군요. 남이 못한 감탕관광까지 하시는구만요”하고 추켜세웠다. 피부에 좋고 신체기관에 좋은 약효가 있다고 북측 안내원들은 자랑을 했다.

안내원들은 무척 친절했다. 혹시 캐나다 송광호 기자(강원도민일보사)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그 선생, 예전엔 자주 오더니 요즘 보이질 않아요”라고 답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고려호텔에서 안내원이 필기해준 일정 기록과 사진 한 장이 없어져 버린 점이다. 신혼군인을 찍은 사진인데, 그 사진만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군인에 관한 것은 철저히 견제하고 있음을 알게 해준 사건이었다.

박우호·뉴욕 강원도민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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