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의 태양은 하루가 다르게 뜨거워지고 있다. 달포를 넘긴 촛불시위는 이 염천(炎天)을 더욱 달궈 놓고 있다. 2008년의 촛불은 짧은 기간 많은 변화를 만들어냈다. 무엇보다 요지부동일 것만 같던 정부의 등을 떠밀어 한·미 양국이 다시 협상테이블에 앉도록 했다. 100여일 만에 새 정부의 청와대 비서진을 전면 물갈이 하도록 하고, 고소영이니 강부자니 하는 비아냥을 받아 온 내각을 수술대에 오르게도 했다.

촛불은 어디서 왔으며, 언제까지 타오를 것인가. 그 진원과 배후를 둘러싼 다툼이 없지 않지만 촛불은 결국 이명박 정부와 민심 사이의 엄청난 불일치가 만들어낸 산물이다. 촛불은 누가 뭐래도 권력이 왜 민심 속에 든든한 뿌리를 내리지 않으면 안 되는 지를 말해 주고 있다. 민심과 따로 노는 권력이 얼마나 위태로운 것인가를 웅변하고 있다. 지금 촛불은 민심과 정권 사이에 가로놓인 치부와도 같은 부끄러운 간극을 끊임없이 비춰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쇠고기 부실협상은 그 불일치의 섶단에 불을 그어대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정부와 국민 사이에 가로놓인 이 엄청난 간극을 어떻게 메울 수 있을 것인가가 지금부터 풀어야 할 과제다. 당장은 급한 불을 끄는 것이 필요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런 주문을 했다. 문제는 언제든지 타오를 준비가 돼 있는 가연성이 높은 수 많은 섶단이다. 정부가 쇠고기 협상의 부실을 인정하고 추가협상에 나선 것은 우선 급한 불을 끄겠다는 불가피한 조치였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부가 희망했고 많은 국민이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 응급처방이 제대로 됐다고 보기 어렵고 근본적인 환경이 개선됐다고 보기는 더욱 어렵다. 이번 추가협상이 재협상 불가론을 설파해 온 정부와 재협상 당위론을 주장해 온 야권이나 촛불민심 사이의 골을 조금도 메워주지 못한 것이다. 양측 사이에 가로놓인 형식논리의 간극을 좁히는 것이 어려웠다면 추가협상의 내용을 통해 좀더 접점에 다가섰어야 했다.

정부 당국은 기대 이상의 성과라며 스스로 고무된 듯한 평가를 내리고 있는 반면 반대 쪽에서는 국민건강권과 검역주권 확보라는 근본적인 문제는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다고 본다. 그 거리는 참으로 멀고 아득하게 느껴진다. 정부는 벼랑 끝 전술과 5단계 전략을 통해 치밀하게 일궈낸 결과라며 거듭 성과를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열심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고 있지만 문제는 받아들이는 쪽의 태도다. 정치권의 반응이야 논외로 친다고 하더라도 국민여론도 추가협상에 대해 결코 우호적인 편이 아니다. 정부 여당이 일사천리로 추진할 태세였던 추가협상에 따른 후속조치를 서두르지 않겠다며 여론의 추이를 살피고 있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점입가경의 국면이 국민을 짜증스럽게 만든다. 지금의 갈등과 혼란상이 소통부재와 불신으로부터 야기됐다면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진정성이 사태 해결의 전제가 돼야 한다. 문제는 정부 당국이 과연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겠다는 의지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여전히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형편 없는 한·미쇠고기 협상은 사상 유례없는 국민적 불신을 야기하고 결국 청와대 비서진과 내각을 전면 교체하는 사태를 불러왔다. 많은 국민들이 여전히 마음을 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 당국의 추가협상에 대한 자기평가가 낯 간지러운 자화자찬으로 비치고 있다면 아직 멀었다. 크게 무너진 신뢰가 그렇게 서둘러 주워 담아질 턱이 없다. 지금은 빚 독촉하듯 서둘러 국민의 이해를 받아내려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크게 자중하고 인내하며 국민의 신뢰를 기다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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