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통령들이 근대적인 보좌시스템을 갖춘 것은 32대 F. D. 루즈벨트 대통령 때 부터였다. 루즈벨트는 당시 저명한 법조인인 L. 브라운이 이끄는 행정관리위원회의 건의에 의해 1937년 대통령의 보좌기구인 비서실과 대통령부를 설치했다. 루즈벨트는 기구신설과 함께 보좌진들에게 충성심과 금기사항을 엄명하는 5가지 수칙을 하달했다. 즉 대통령보다 앞서 나가기, 행정부에 관여, 대통령과 장관사이에 끼어들기, 개인의견의 개진 등을 철저하게 삼가라는 지시로 이는 지금까지 ‘비서의 수칙’으로 전해져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의 비서실이 제대로 가동된 것은 1964년 1월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다.

이승만 대통령은 1949년 9월 비서실직제를 마련했으나 4·19혁명으로 하야할 때까지 정무(박찬일) 행정 및 일반(고재호) 공보(김광섭) 경호(곽영주) 등 6~7명의 비서만 거느렸다.

박 대통령은 취임 후 16년간 정부 경제 교육 문화 민정 공보 총무수석 등의 비서실을 운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후락 비서실장과 박종규 경호실장 등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비서실을 권부로 만들고 부정축재 의혹의 대상이 됐으나 비서실이 대통령을 보좌하고 내각을 독려해 1960~70년대 안보의 강화와 경제발전을 촉진하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지난주 이명박 대통령은 쇠고기 파동 및 시국수습과 관련해 취임한 지 117일만에 대통령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을 전원 교체했다. 앞서의 비서진은 내각과 함께 ‘고소영’ ‘강부자’‘귀족’ 비서진이라는 눈총을 받았다. 거의 학자출신으로 구성된 그들은 쇠고기 파동을 계기로 촛불시위 등을 통한 민심의 폭발과 온갖 불만이 분출을 예측은 커녕 이를 해소시킬 처방과 해법을 내지못하고 국민과 대통령의 눈치만 살피다가 여론에 밀려 물러난 것이다.

한마디로 학벌 등은 화려했지만 경험 및 경륜의 부족, 현실파악과 대처능력의 미숙, 실천력과 순발력 등의 결여를 드러낸 것이다. 쇠고기 합의 전후에 반드시 했어야할 대국민 설득이 없었는데다 국민들이 고유가, 고환율, 고물가로 고통을 받고 있음에도 누구 한사람 관계분야인사 또는 일반국민들과 대화하고 국민의 소리를 듣는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느면에서 이번 사태는 내각과 비서진의 잘못된 인사, 국민의 뜻과는 거리가 있는 인사에서 비롯됐다. 또 자만과 과신속에 대통령이 모든 것을 관장하고 많은 이야기를 하고 조급하게 성과를 내려는 데에 근본원이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비교적 현실경험자들이 포함된 새비서진은 1기 비서진의 실패를 거울삼아 정확한 상황판단, 올바른 민의전달, 직소 직언의 소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한밤에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촛불행렬을 보면서 뼈져린 자책과 반성을 했다는 이대통령은 민심의 이력과 무서움을 알고 소통과 눈높이 맞추기에 노력해야 한다. 무조건 따르라는 식보다 성실과 겸손, 고행의 자세로 국정을 이끌어야 한다.

18대 국회가 개원된 후 당연히 내각도 전면적 수술로 새출발해야 한다. 또한 비서진들에게는 루즈벨트의 5훈을 엄수케 해야 할 것이다.

이성춘 언론인·전 고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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