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식 강릉대 교수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보수와 진보에 대한 논쟁이 한참이다. 구태 의연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이념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토론의 쟁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논쟁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 일 수밖에 없다.

보수 혹은 보수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종교나 문화 및 민족의 전통적인 가치의 수호를 주장하는 정치이념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종교나 문화, 민족은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고, 그들이 지키고자하는 가치 또한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따라서 보수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가치관에 따라 일부는 현체제를 유지하려고 하고 일부는 구체제로의 복귀를 원하는 이도 있다는 것이다. R.J. White는 보수주의는 정치적 사상이라기보다는 마음의 습관, 감정적 상태, 삶의 방법에 더 가깝다고 말했다.

진보 혹은 진보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정치, 경제, 사회 체제의 개혁을 주장하는 정치사상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진보주의는 개혁 혹은 변화를 주장하는 세력들이다. 그러나 개혁정책을 주장한다고 해서 모두 ‘진보’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보수성향을 가진 이들도 개혁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혹자는 영원한 보수도 영원한 진보도 없다고 한다. 맞는 이야기다. 시대상황에 따라 인간적 사고나 감정이 변화됨에 따라 개인적 성향도 바뀌는 것이고 이에 따라 견해도 바뀌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역사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태조 이성계를 도와 조선개국에 나섰던 인물들을 훈구파라고 한다. 훈구파는 조선개국에 많은 공을 세워 개국공신으로 한동안 막대한 권력을 행사했으며, 혁명파 사대부의 후예로 15세기 민족문화의 주역이었다. 초기 이들의 정치적 성향은 이론보다는 현실을 중시하고, 부국강병책과 실리추구를 주창하는 개혁세력들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은 권력과 재물 등 그들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보수적 성향이 강화되었다.

반면 조선의 개국과 함께 조선개국에 반대하여 공신집단인 훈구파에 밀려 고향으로 낙향한 이들이 사림파이다. 이들의 정치적 성향은 명분과 도덕을 중시하고 현실보다는 이상을 중요시 여겼던 계층이며, 이들은 보수적성향이 강했다. 이들은 훈구파의 세력이 커지자 이들을 견제하려는 성종에 의해 다시 정치권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후 이들의 정치적 성향은 훈구파의 세력을 견제하고 조선을 변화시키려는 새로운 개혁적 성향이 두드러졌다.

이처럼 보수와 진보의 논쟁은 현재나 과거 모두 시기에 따라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진행된다.

요즘 미국에서도 대선을 앞두고 보수와 진보에 대한 논란이 선거바람을 타고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보수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집권당인 공화당과 차기집권을 노리는 진보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민주당의 정치적 이슈는 그들의 공약사항에서도 명확하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와 관계되는 것으로 FTA에 대한 보수와 진보 집단간에 견해차이는 크다. 부시대통령은 미국의 발전을 위해 한미FTA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고, 민주당의 대선후보인 오바마는 한미FTA가 미국의 발전을 저해할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통합민주당이 여당일 때는 한미FTA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신속한 처리를 요구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FTA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많은 부정적 의견들을 지적하고 나섰다. 그러나 여당과 야당이 뒤바뀐 현실에서는 모두 다른 입장에서 다른 의견들을 내고 있으니 도대체 당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자신들의 입장에 따라 자신들의 정책을 밥먹듯이 바꾸고 있으니 정치가 ‘하류’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맞는 것도 같다. 이것을 보면 우리나라는 보수니 진보니 하는 정치적 이념은 과분하고, 그저 정쟁만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따라서 필자가 생각하기엔 우리나라에는 정통보수와 정통진보는 없는 것 같다. 다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적당한 타협과 이를 위한 자신의 발언 기회를 확대시켜 보자는 그래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시키려는 의도 일뿐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 모두의 사고나 생각을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그것이 진실왜곡이나 주어진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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