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춘
우리나라의 역대 대통령과 정권들은 저마다 예외없이 시정에 반발하고 분노한 국민들의 시위에 시달려왔다.

이승만 대통령은 무리하게 불법적으로 장기집권을 기도하려다 4·19학생혁명으로 하야해야 했다. 장면 정권은 재임 9개월 동안 매일 꼬리를 문 국민각계의 데모로 곤욕을 치렀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은 18년간 재임 중 3차례 격렬한 국민적 저항을 받았다. 한일협정, 3선 개헌, 10월 유신 등에 대한 반대 시위가 그것이다. 12·12와 5·18로 권력을 쥔 전두환 정권은 재임 8년 내내 학생과 재야인사들의 퇴진 요구 시위와 씨름을 해야만 했다.

5년 대통령 단임제가 시행된 후 노태우 정권은 6·29선언을 계기로 폭발한 민주화 요구와 격렬한 노동쟁의로, 김영삼 대통령은 우루과이라운드에 따른 농민들의 쌀 수입개방의 반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은 대북유화 내지 친북성향의 정책으로 각각 저항을 받았다.

사실 역대 대통령들이 곤욕을 치른 시위는 따지고 보면 본인이 자초한 자업자득의 결과였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3~4개월 만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시위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근 두달 동안 수도·서울의 중심부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합의의 백지화 또는 재협상을 요구하는 대규모 촛불시위를 계속함으로써 도심이 마비되고 국정도 사실상 완전중단이 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동안 미국은 한국·일본·대만 등과 쇠고기 수출을 위한 협상을 진행해왔다. 지금까지 일본과는 20개월 미만의 소만 수입하고 개별 월령 및 생육과정 등 3가지 증명서류 첨부와 검역반의 자유활동 등의 조건으로, 대만과는 등뼈를 제외한 30개월 미만만 수출키로 한 까다로운 조건의 완화를 시도해왔다. 이런 상황 하에서 한국이 지난 4월 18일 30개월 미만의 월령을 주축으로 합의하자 일본과 대만 등은 놀랐던 것이다.

국민의 건강주권을 외치던 시위대는 시간이 지나면서 정권퇴진 등의 정치적 시위로 변질되어 갔다. 대통령과 정부가 전 정권이 해오던 것이어서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안이하게 여겼던 합의-타결에 대해 그동안 누적됐던 정부에 대한 불만들이 쏟아졌다. 인수위의 잘못운영, 내각과 청와대 참모진들의 ‘고소영’‘강부자’ 인사 등에 대한 불만 등이 폭발 가세한 것이다. 마라톤 촛불시위는 뒤늦게나마 미국과 쇠고기 수입에 관한 보완 장치의 합의를 이끌어냈고 530여만표의 승리로 자만한 대통령과 정부의 사과를 두차례나 하도록 하게 하는 성과를 냈다. 그동안 시위대의 과격한 폭력행위와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남은 것은 나라와 국민들의 마음의 상처뿐이다. 뒤늦게 검찰과 경찰이 법과 사회질서의 확립을 내세우며 강경대처에 나선 것은 당연하다. 시위대들도 즉각 시위를 중단·자제하고 정부의 앞으로의 태도를 지켜보는 게 순리다. 과연 이 대통령은 내각쇄신, 국정쇄신, 청와대와 내각의 대국민자세의 재정립을 어느 정도 어떻게 이룩할 것인지 기다려봐야 할 것이다.

정부가 명심할 것은 국민에 대한 겸손과 헌신, 특히나 중요 사안에 대한 설명·설득 등 대화와 소통의 노력이다.

나라안팎으로 어려운 이 시기에 언제까지 촛불시위-저지로 숨바꼭질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언론인·전 고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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