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 창 섭

관동대 교수(한국시문학회 회장)
필자는 몇 년 전 졸시 <어머니의 교훈>에 ‘지순한 이 땅의 어머니는 / 사랑하는 아이가 자라 / 혈육의 의미를 깨닫게 될 때면 /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이름이며 / 태극기는 겨레의 표징이라는 것과 / 동해물과 백두산이로 시작되는 애국가를 / 목이 쉬도록 가르친다’라는 심상을 시적으로 형상화 한 바 있다. 마침 53회 현충일인 지난 6월 6일 「365일 태극기 달며 ‘애국·애향’」이란 제목의 기사는 ‘춘천 근화동(槿花洞) 22개의 통장협의회에서 나라, 고향 사랑 연중 게양운동 펼쳐’ 주민들이 한마음으로 결집·화합하여 동의 발전을 다짐했다고 보도했다.

오랜 날 ‘예술에는 국경이 없지만, 예술가에게는 조국이 있다’를 역설해 온 필자의 지론이지만, ‘국어의 세계화를 심도 있게 논의하고 모색해야 할 현상’에서 안타깝게도 민족의 혼이며, 역사요, 문화인 국어의 존폐가 ‘영어몰입교육’의 문제로 위협받고 있는 현실과 국보 제1호로 한국인의 자긍심의 표징인 숭례문(남대문) 소실로 민족의 자존심이 온통 무너져 내린 혼란한 사회에서 춘천시민의 위대함과 당당함은 새삼 충격적인 감동을 안겨주기에 결코 부족함이 없다. 간혹 우리가 외국의 여행길에서 접할 수 있는 일로 새삼스러운 경우는 아니지만 한국대사관 청사에 게양된 태극기를 응시할 때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태극기는 우리나라 깃발입니다’의 가슴이 찡한 그 감격, 민족에 대한 그리움이 저마다에게 다시금 살아날 것이다.

필자 자신이 근화동 주민들이 합의하에 365일을 비가 오고 눈이 와도 태극기로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다짐한다는 놀랍고도, 감동적인 사실을 접하고 많은 것을 다시금 되뇌이게 되었다. 젊은시절 4월이면 전국 곳곳에서 벚꽃 축제나 놀이로 명승지가 온통 시끌벅쩍하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의 몇몇 도시에서라도 나라꽃인 <무궁화 축제>가 열리는 곳이 있으면 너무 좋겠다는 기대감으로 지역 언론사의 도움으로 ‘무궁화 축제 행사’를 개최하며 미래의 민족 지성인 젊은 제자들과 함께 도심의 공간에 몇천그루의 무궁화를 심기도 했다.

필자의 경우 태어나 성장하고 60년 남짓 줄곧 몸담고 있는 강릉은 지정학적으로 산수가 빼어나고 자연이 함께 어우러진 공간이다. 산자락 푸른 시정이 넘쳐나는 천년 문향인 강릉시청 입구의 도로 주변에는 지금 명품 소나무인 금강송(金剛松)이 이식되어 있다. 또 주위에 ‘전국에서 제일 큰 태극기를 제작하여 1년 365일 내내 바람에 펄럭이는 태극기를 게양하여 영동 수부(首府)도시로 문화관광 도시를 찾아줄 이들에게 꿈과 낭만의 도시인 강릉에 대한 강한 이미지를 각인시켜주고 또 거주하고 있는 23만 시민들에게도 문화시민의 자긍심과 결집력을 일깨워 주는 동기를 부여했으면, 너무 좋을 것이라는 소박한 기대감을 지난해 11월, 춘천자유회관에서 있었던 강원문인대회 특강에서 피력하여 청중의 박수를 받기도 하였다.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라는 논의의 최소한 기대치라면 무엇보다 주저함이 없이 몸담고 있는 공간과 시간대에 대한 뒤돌아 봄이며 21세기의 화두인 ‘더불어 함께’라는 공동체 인식(inter-being)에서 비롯된 지극히 건강한 비판정신에 의거한 생산적인 제언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작게나마 취임 직후부터 남 다른 열정으로 명품도시의 새로운 이미지로의 변형을 위하여 고정 틀을 깨는 차별화된 기업문화인식으로 도시의 미관을 가꾸어가는데 참으로 열중하고 고뇌하는 강릉시장에게도 가까운 시일에 지역 주민들의 폭넓은 공론과 검증 수순을 차근차근 걸치고 이같은 방안을 심도 있게 모색하여 그 시행의 기대효과를 스스럼없이 한 사람의 시민으로 제언하였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