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 조
만해마을 주지
내가 여기 설악산 숲길에 있는 것은 … 누가 오라고 하여 왔던 길인가?

누가 가라고 일러준 길인가?

스스로의 생각 생각이 앞산을 울린 범종의 메아리 만큼이나 거듭된 끝에 비로소 전법의 문이 아침 볕에 열리고 지금 여기 설악산 숲길이 맑아졌습니다. 백담사의 새벽은 참으로 경이하고 신비롭습니다. 대청봉의 봉우리는 늘 아침마다 새로운 상큼한 이슬을 머금고, 작년부터 지금껏 야무진 꽃봉오리를 안고 온 산목련은 좀 더 따뜻한 바람을 바라고 있더니 함박웃음꽃을 이제사 마음껏 터트리고 있고, 숲만큼 나무들은 더 깊어가고 백담 계곡은 더욱 생동하는 계절을 맞았습니다. 이 고요한 산사에 서로 반목하는 마을 소식이 전해집니다.

남을 사랑해도 친해지지 아니하면 그 인자함을 반성하고, 남을 다스려도 다스려 지지 아니하면 그 지혜를 반성하고, 남을 예의로써 대하여도 답례 하지 않으면 그 공경을 반성하고, 행하는 일이 뜻대로 안 되는 일이 있으면 모든 원인을 자기에게서 찾아 반성하라. 그 자신의 행실이 바르고서야만 세상 사람들이 그에게 의지한다.

아주 상식적이고 고루한 말일 수 있지만, 자기 위치에 서서 자기 일을 타인의 도움 없이 할 수 있다는 것은 곧 나를 위하고 타인을 위하는 기본이 될 것입니다.

한 마리의 어린 숭어가 수평선을 차지하기 위해 석달이나 넘는 기나긴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꿈꾸는 듯 뭉게뭉게 이는 흰 구름과 사과빛으로 물들어 가는 저녁노을, 그 아득한 수평선에는 인어들이 노니는 동화의 나라, 산호섬이 있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가도 가도 어린 숭어는 수평선 간의 거리가 조금도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지치고 절망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수평선 쪽으로부터 힘차게 헤엄쳐 오는 젊은 다랑어 한 마리를 만났습니다. 다랑어의 눈빛은 희망과 동경에 촉촉이 젖어 있었습니다. 아! 파라다이스로부터 오신 분 저 아름다운 수평선의 나라에는 무슨 빛나는 행운이 있나요? 숭어의 질문에 다랑어는 소스라치게 놀라더니 지친 모습으로 한숨을 푹 내쉬며 “네가 떠나온 그 아름다운 동쪽 수평선의 나라에 무슨 행복이 있는지 지금 막 너에게 물어 보려는 참이었는데…” 말을 잇지 못 하였습니다.

이 짧은 이야기는 자기가 선 오늘 바로 여기에 꿈의 수평선을 만나는 행운이 있음을 일깨워 줍니다. 그러면서 온 종일 찾아 다니기를 쉬지 않는 모순도 발견합니다. 내 자리를 세상과 함께 한다, 대중을 위한다, 누구를 위한다는 대의 명분도 사라지고 함께 함으로써 자기 자신에게 진정 정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발 한발 무상을 철저하게 실감하며 오늘만이 있을 뿐 끝없이 고단한 길을 열어 가다보면 그 생각 자리마저 잊혀질 때 그때 정직한 자신과 만나집니다. 우리가 고통으로 벗어나 자유롭고자 하는 모든 행위들도 근원적인 해탈의 길로 가지 못하고 어떤 테두리 안에서 풀려고 한다면 자신의 고통이 타인에게 전가되거나 생각지 못한 큰 고통으로 전환되어 다시 내게 돌아와 아무런 해결도 얻지 못하게 됩니다. 타인에게 생각을 바꾸도록 하고 사회의 궁극적인 제도를 바꾸려고 하는 것보다 일체의 구속을 떨치고 자유와 평화를 여는 출발점은 바로 여기 이 자리에서 지금 자기 자신으로부터 실천해 갈 때 이룰 수 있습니다. 내 몸 위로 조금씩 조금씩 시간이 쌓일수록 지금 이 장소에서 ‘지금’을 감사하며, 그 지금에 전력을 다 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수행임을 실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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