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 충 근

전 화천 원천초교장
아! 정선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게∼’1971년에 강원도 무형문화재 1호로 지정된 느린 세마치장단의 정선 아리랑(아라리)의 ‘받는 소리’다. 이렇게 구성진 가락과 1700여 개 가사의 멋과 맛이 어우러진 정선 아리랑 같은 민요가 이 지구상 어디에 또 있으랴? 가을 산과 들을 수놓는 노란 들국화의 그윽한 향기 같고, 높은 산의 곰취나물의 감칠 맛 같으며 뻐꾸기와 두견새의 애절한 울음소리 같은 정선아리랑이야말로 부르면 부를수록 들으면 들을수록 가사를 음미하면 할수록 더욱 정감이 가는 우리 민족의 가락이 아닌가?

정선아리랑은 강원도 3대민요(강원도아리랑, 정선아리랑, 한 오백년)의 하나이며, 우리나라 3대 전통 아리랑(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 정선아리랑)중의 하나다. 정선아리랑은 다른 아리랑보다 500년 정도 앞선 셈이니 실로 아리랑 중의 아리랑이며 아리랑의 꽃이고 원조다.

가사는 일연의 ‘받는 소리’와 일연 이행으로 된 1700 여 연의 ‘메기는 소리’로 되어 있다. 메기는 소리 중 첫째연이라고 할 수 있는 ‘눈이∼ 올려나 비가∼올려∼나∼ 억수 장마∼질려∼나∼ 만수∼산 검은∼구름∼이∼막모여∼든∼다∼’라는 가사에는 사연이 있다. 조선왕조가 개국될 무렵 고려왕조를 섬기던 선비들 중 전오륜(全五倫)외 6명의 선비들이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정으로 고려의 서울, 송도(지금의 개성)의 만수산(萬壽山)에서 은둔하다가 정선군 남면 거칠현동(정선아리랑의 발상지)으로 은거지를 옮기고, 지난 날 섬기던 임금과 두고 온 가족과 고향을 그리면서 비통한 심경을 한시로 지어 전승되던 민요가락에 맞추어 노래한 것이 정선아리랑의 유래다. 그 때 선비들이 ‘누가 나의 처지와 심정을 알리?’에서 연유하여 정선아리랑을 ‘정선아라리’로도 부른다고 한다.

정선 아라리에는 느린(긴) 아라리, 자진(빠른) 아라리, 엮음 아라리가 있는데 느린 아라리는 크게 수심(愁心), 산수(山水), 애정, 처세, 무상, 엮음 편으로 되어 있다.

정선 아라리의 특색은 가락이 구슬프고 구성진 곡조를 지니고 있으며 시대의 흐름에 맞게 인간상을 노래하므로 가사가 많고 뜻이 통하는 노래를 서로가 주고 받으며 독창과 합창으로 할 수도 있다. 또 어절과 끝소리 가락의 흔들림과 받는 소리와 메기는 소리, 자진 아라리와 엮음 아라리는 정선 아라리의 독특한 멋과 맛이라 하겠다. 두 행의 짧은 가사로 몇 번 들으면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다. 두 행으로 부족할 때는 긴 사설을 빠른 음절로 엮어 내려가다가 뒷 절에 가서 느린 아라리 본 곡으로 마무리 짓는 것이 엮음 아라리인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영감은 할멈치고 할멈은 아치고 아는 개 치고 개는 꼬리치고 꼬리는 마당치고 마당 웃전에 수양버들은 바람을 휘몰아∼치는∼데∼ 우리 집∼∼에 서방님∼은∼ 낮잠만∼ 자∼네’

정선군은 정선아라리 전수를 위해 정선아리랑 전수관, 정선아리랑 창극공연, 정선아리랑 공연예술원, 5일장 아리랑 창극 공연 등을 운영하고 있다. 정선 사람들은 모심을 때, 나무할 때, 나물을 뜯을 때, 김맬 때, 생일잔치, 자장가 등으로 생활 속에서 늘 아라리를 부른다고 한다. 민족의 얼과 강원도민의 정서가 흠뻑 담긴 정선아라리가 이 메마른 세상에 윤활유가 되어 강원도는 물론 전국 방방곡곡과 온 세계에 메아리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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