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각책임제를 채택하고 있는 영국 독일 이태리 일본 등의 장관의 수명은 주로 내각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로 결정된다. 장관은 정책의 방향만 제시하고 전문적인 행정은 직업공무원들이 맡게 되어 있어 수시로 내각을 개편해도 정책의 일관성에는 별로 지장이 없다.

반면 대통령제의 원조격인 미국의 경우 장관의 임기는 대통령과 같이 4년이라는 얘기가 있다. 자진사퇴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도중하차하는 경우가 드물다. 물론 내각 개편-개각도 단행한다. 국정운영의 실패, 대통령과 의견대립, 개인적인 사정에 의한 사퇴, 그리고 사망한 때는 개각을 단행한다. 다만 임명전과 의회청문회에서 철저한 검증을 거쳤기 때문에 무능과 자질부족 등이 경질사유가 되는 예는 거의 없다. 특히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임명권자인 대통령은 내각개편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개각의 폭, 후임자 선정 및 단행시기에 대해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 카터 대통령은 경제정책의 실패로 인플레이션이 고조되고 에너지 파동이 닥쳐오자 근 2주일간의 장고 끝에 개각을 단행했다. 대폭 교체라는 예상과 달리 에너지 장관 등 소폭개각에 그쳤고 대부분의 각료들이 유임된 데다 단행시기를 실기해 국민의 반응은 냉담했고 결국 재선도전에 실패했음은 잘 알려진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후 4개월 만에 처음으로 7일 농림수산 교육과학 보건복지 등 3개부서의 장관을 바꾸는 소폭개각을 단행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파동과 촛불시위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한승수 총리 등 내각이 총사퇴를 결의한 지 한달 만에 이루어진 것이다. 쇠고기 파동과 촛불시위와 관련해 이 대통령이 두차례나 국민에게 사과하고 국민 눈높이의 국정쇄신을 약속한 데다 한달 전에 내각과 청와대 참모진이 사퇴를 밝힌 뒤 비서실장과 수석들은 전원 교체된 바 있어 진작부터 대폭개각이 예상됐었다.

이런 연유로 개각이 국민들에게 의아한 인상을 준 것은 첫째 대폭 또는 중폭이 예상됐던 것이 소폭으로 낙착된 것이다. 다음 야당이 경제위기와 관련 경질을 요구했던 한 총리와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이 유임된 것, 셋째 강 장관은 유임되고 엉뚱하게 고물가 고환율의 책임을 물어 차관을 경질한 것 등이다.

이 대통령은 개각에 대해 “이번 개각은 일해 볼 시간이 없어 책임을 묻기에는 무리가 있다” “책임이 있다면 나에게 있다” “역대 정부에서 장관이 자주 교체되어 많은 부작용이 있었고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갔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야당은 “현실을 미봉하려는 국민기만 개각, 면피용 개각이다. 이것이 과연 국민눈높이를 맞춘 개각이냐”며 비난에 나섰다.

이 대통령은 소폭개각에 대해 많은 숙고와 계산을 했을 것이다. 새 정부 출범 3~4개월 만에 총리 교체 등 대폭개각은 매우 아쉬웠을 것이다. 청와대 비서진을 전원 경질한 만큼 내각까지 대폭수술은 지나친 양보라고 판단했을 것 같다. 또 747 경제정책을 입안하고 실행총책인 강 장관을 본격적으로 실험도 하기 전에 경질은 수용불가라고 생각했을 듯하다. 나아가 촛불시위가 소강상태로 접어들고 높아가는 국민들의 경제난 걱정에 초점을 맞췄을 것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이번 개각은 폭과 수준 및 시기와 관련, 효과-약효가 크게 저하·약화됐다. 쇠고기 시국을 극복하고 국민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최소한의 중폭으로 해서 총사퇴의사를 밝힌 뒤 적어도 이주일 이내에 단행했어야 했다. 게다가 강 장관을 유임시키고 물가와 환율을 책임을 지워 차관을 교체한 것은 문제가 많다. 차라리 차관도 유임시켰어야 했다.

이제 국민은 대통령과 내각의 새 행보를 지켜볼 것이다.

언론인·전 고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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