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상빈 강릉 아산병원 정신과
우리는 거짓이 아닌 진실을 믿고 싶어 한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어 왔던 것이 거짓이라고 밝혀지는 순간 그와 연관된 가치는 순식간에 허물어지고, 진실에 대한 의구심이 생긴다. H씨의 논문조작, S씨의 학력위조 등이 사회적 신뢰지수에 엄청난 타격을 주었던 것을 기억해 보자. 요즘 우리가 그동안 믿고 먹어왔던 수입쇠고기가, 병을 지니고 있을지 모른다고 보도되면서 예전의 믿음이 사라져 버렸다.

최근 미국에서 환경연구단체들이 선 블록크림의 80%가 효과가 미흡하거나 몸에 해로운 물질을 함유하고 있다고 주장하여 논란이 일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피부보호를 위하여 선 크림을 구입하여 끊임없이 발라왔다. 즉 선 크림이 피부를 보호해 줄 것이라 아무 의심 없이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선 크림의 효과에 의문을 던지는 뉴스를 보고난 뒤에는 과연 예전처럼 선 크림을 신뢰할 수 있을까. 여기서 우리의 믿음들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도대체 일상을 지탱시키는 믿음들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모든 인간을 신뢰하는 착한 마음에서 온 것일까? 하지만 사람들은 그다지 순진하지도 착하지도 않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믿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그 믿음이 자신의 욕망에 기초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실이 먼저 있기 때문에 믿음이 생긴다는 교과서적 견해는, 실상 현실에서는 별로 설득력이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진실이 무엇인지 선험적으로 알지 못하며, 단지 있을 것이라고 가정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실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진실이 있어야 한다.”는 강박증에 다름 아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진실의 유무를 소모적으로 따질 필요가 없다. 그보다는 욕망이 먼저 존재하고, 그 욕망을 충족하기 위하여 믿음이 생겨난다는 점을 인정하는 편이 훨씬 더 생산적이다. 값이 저렴한 수입쇠고기를 먹고 싶기 때문에 그 고기에 이상이 없을 것이라 믿고 싶게 되는 것이다. 피부를 보호하기 위하여 선 블록크림을 바르고 싶기 때문에 그 선 크림이 자외선을 확실하게 차단해줄 것이라 믿고 싶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일상의 믿음들은, 믿음이라기보다는 환상에 더 가까운 것이다. 즉 욕망에 기초하여 욕망이 원하는 방향대로 어떤 환상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먹는 영양제도 마찬가지이다. 건강해지고 싶은 욕망으로 인해 ‘영양제를 먹으면 건강해진다는 환상’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영양제의 실제 효과는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모 단체에서 시중 약국에서 판매되는 영양제들이 실제로 효과가 없는 무용지물이라고 발표하면 사람들의 환상은 일시적으로 깨지게 된다. 그렇지만 건강에 대한 욕망은 즉시 영양제가 아닌 다른 환상을 원하며 만들어내게 될 것이다.

이제 시야를 좀더 넓혀보자. 경제적으로 걱정 없이 잘살고 싶다는 국민들의 욕망은 경제대통령이라는 환상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경제상황이 계속 어렵게 돌아가자 국민들의 환상이 흔들리고 있다. 국민들은 잘살고 싶은 욕망이 너무나 강력하기 때문에 경제대통령이라는 환상을 어떡하든 유지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참신한 어떤 대안을 원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강만수 장관의 유임은 결코 새로운 대안이 없음을 대통령이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셈이 되고 말았다. 필자는 경제대통령이라는 국민들의 환상이 깨져버릴까 두렵다.

왜냐하면 그 환상이 깨지게 되면 이 어려운 경제적 난국을 헤쳐 나갈 효과적인 대안이 현재로서는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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