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연 소설가

김 도 연  소설가
아무래도 소 얘기를 해야겠다.

얼마 전 내가 살고 있는 대관령으로 찾아온 서울의 시인, 소설가들과 밤 깊도록 광우병 이야기를 나누며 술잔을 비웠던 적이 있었다. 그들 중 누군가가 내게 광화문 촛불시위에 참가했냐고 물었다. 나는 그 질문의 의도를 어느 정도 짐작했기에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참가하지 않았다고. 예상했던 대로 그 사람은, 집에서 소를 직접 키우고 있는 처지에 한 번도 촛불을 들지 않은 나를 성토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소와 함께 여행하는 소설까지 쓴 당사자가 취할 처신이 아니라는 얘기였다. 나는 그 사람의 충혈된 눈을 오래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소와 그리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마을운동장에 나가 놀지도 못하고 아버지의 불호령에 쫓겨 냇가나 산에 매어놓은 소에게 어두워질 때까지 꼴을 먹여야만 했다. 나는 덩치 크고 뿔 달린 소가 무서웠다. 집으로 돌아갈 때면 소 앞에 서지 못하고 늘 소 뒤에 서서 고삐를 잡았다가 낭패를 보았다. 소는 길바닥에 나를 팽개치고 저 혼자 뛰어서 먼저 집으로 돌아갔으니까. 손과 무릎이 까진 것은 아버지의 관심사가 될 수 없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아버지 앞에서 얌전한 요조숙녀처럼 꼴을 먹고 있는 소는 더 얄미웠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소는 부정할 수 없는 집안의 큰 일꾼이었으니까. 소가 없으면 봄날 누가 사래 긴 돌밭을 간단 말인가. 그 정도는 알고 있었기에 외양간에서 나를 보며 싱글싱글 웃고 있는 녀석을 팔아버리자고 아버지에게 조를 수 없었다.

집을 떠나 있던 청소년기에야 비로소 조금씩 소의 영향권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방학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면 여전히 외양간이나 마장에서 꼴을 먹거나 폭포수 같은 오줌을 누고 꼬리로 파리를 쫓는 소를 볼 수 있었다. 어렸을 적 나를 무시했던 그 소는 아니지만 나는 괜히 소에게 다가가 뿔을 잡거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젠 그 옛날의 내가 아니라는 과시도 했던 것 같다. 소도 기꺼이 인정하겠다는 눈빛을 전해왔던 듯싶다. 왜냐하면 내 뒤엔 방금 베어온 싱싱한 꼴이 한 무더기 있었으니까. 어쨌든 그 화해가 무척이나 즐거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소설 쓰기의 미로에 갇혀 헉헉거리던 시기에도 소는 어김없이 나타났다. 꿈속의 그 소는 학교에 가려는 나를 방해하거나 외양간으로 들어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어떤 때는 미친 소가 되어 길길이 날뛰기도 했다. 그 미친 소의 머리가 갈라지면서 안에서 나온 것은 바로 피투성이인 나 자신이었다. 소들이 단체로 가출을 시도하는 꿈도 꾸었다. 국도변까지 나간 소들에게 달려가 집으로 돌아가자고 사정했더니 소는 이렇게 말했다. 너를 의지하고 살다간 겨울에 굶어 죽을 것 같다고. 나는 각서까지 쓰고 소들을 데려왔다. 꿈과 꿈 밖에서 나는 그렇게 오랜 세월 소와 씨름하며 세상을 이해하고 조금씩 소설을 써왔던 것이다.

촛불시위에 참가하지 않았다고 열을 내는 서울의 시인에게 나는 취한 목소리로 횡설수설 이렇게 말했다. 정말 미안하다고. 하지만 그곳에는, 소는 없고 쇠고기만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더 많은 공산품을 팔고 값싼 미국산 쇠고기를 먹기 위해 우리 농촌을 버린 것은 당신들이라고. 언제부터 우리가 쇠고기를 그렇게 자주 먹었느냐고. 당신들의 촛불이 켜져 있어야 하는 곳이 그곳이라면 나의 촛불은 코에 코뚜레를 꿴 채 외양간에 앉아 있는 소들 앞이라고. 결국 우리는 쇠고기에 홀려 외양간의 소를 잃어버린 건 아니냐고.

그래서 서울에 가지 않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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