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희 정 강원여성연대 상임 대표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지난 2006년 5·31 지방선거에 여성 비례대표제를 처음으로 도입한 후 상반기가 지나고 나자 하반기 원 구성과 관련하여 강원도 몇몇 지방자치단체가 시끄럽다. 공천과정에서 2년씩 임기를 보장하기로 약속했다며 약속을 이행하고 현역 여성의원에게 스스로 물러나라고 요구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생활정치를 실현하는 직접적인 내 삶의 현장에서, 여성이 정책의 대상으로만이 아닌 주체로서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고 거기에 따르는 혜택과 부담을 함께 나눌 수 있고 또한 여성의 능력을 개발하고 활용할 기회를 균등히 보장받으면서 우리 여성들의 지위를 한결 높일 수 있는 중요한 기회였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기대하며 지켜보던 한 사람으로서 이러한 엉뚱한 뒷얘기는 사실이 아니기를 바랐었다. 지방의원이라는 자리가 자리만 차지하고 임기만 바라는 곳이 아니라 일을 해야 하는 자리인데 2년씩 나누어 과연 얼마나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먼저 들었다. 2년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자신의 능력을 과연 제대로 펼 수나 있을까, 해서이다.

그러나 만의 하나 이러저러한 사정에 의해 당사자 협의를 거쳐 2년씩 임기를 나누도록 약속하고 공천을 받았다고 해도 그 선택은 유권자들이 할 수 있도록 선거 당시 유권자들에게 알렸어야 했다. 헌법상 보장된 정당활동의 자유에 비춰 공천과정을 법적으로 강제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그러한 합의 과정을 막을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유권자들은 그 사실을 알 권리가 있다. 또한 그 내용은 유권자들이 선택을 달리할 수도 있는 중요한 내용이기 때문에 유권자들에게 알리고 유권자들의 선택을 기다렸어야 했다.

지역의 비례대표 후보를 공천하는 과정에서 그 지역 당원협의회 핵심관계자와 도당 사무처가 협의해 1, 2번으로 공천하면서, 당선될 경우 임기를 1번 후보자가 상반기 2년, 2번 후보자가 하반기 2년씩 하기로 약속 했다면 약속을 이행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맞지 않느냐고 도덕론까지 이야기가 되고 있는 모양이다.

약속을 했으면 약속을 지키는 것이 윤리에 맞다는건데 동의하기 어렵다. 지방의회에서의 여성비례대표제는 공적 영역의 여성진출을 보장받기 위해 오랜 세월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성들이 투쟁해서 얻어낸 역사적 성과이다. 누가 시혜적으로 베풀어 얻은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걸 유권자들과 아무 동의도 없이 정치적 계산에 의해 밀실 뒷거래하듯이 나누어 놓고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도덕과 윤리의 잣대를 적용한다는 것에는 쉽게 동의가 되지 않는다. 이는 특정 개인이나 정당에 국한된 일이 아니라 지역주민과 유권자를 기만한 행위라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합의과정 조차도 원만하게 이루어지지 못해 당사자는 물론 당정까지 나서서 수습하느라 분주하다고 하니 기대했던 여성정치가 기존 정치의 좋지 못한 모습을 그대로 닮다 못해 휘둘리고 있는 모습으로 비춰져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아예 비례대표제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나올 거라는 우려가 처음부터 있었다. 역시나 어떤 이들은 여성 정치인의 등용문으로 활용되는 할당제를 축소하거나 없애자고 한다. 하지만 빈대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태우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시기에 기초의원선거의 비례대표제를 폐지하고 대신 여성선거구제를 도입하자는 취지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일부 의원들에 의해 발의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소수파와 약자의 의회 진출 기회를 담보하는 비례대표제의 장점은 살리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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