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남 소설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을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전국적으로 확산될 즈음 신문과 방송에 자주 오르내린 단어가 검역주권이었다. 이른바 구매자 측에서 쇠고기를 직접 검사하고 수입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검역주권에 이어 시민운동 단체들은 밥상주권을 외쳤다. 음식상을 차리는 주부가 반찬을 골라 차려야 되는데 그렇지 못하니 새로운 단어 ‘밥상주권’이란 말이 생겨났다. 물건을 사고 팔 때 구매자가 물건을 선택하는 일은 상행위의 기본인데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가장 잘 발달된 나라에서 그 기본도 모르고 억지로 자국의 쇠고기를 팔아넘기려 했으니 힘있는 자의 논리와 횡포 앞에 우리 국민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며칠째 신어서 고린내 나는 양말을 자기 것이니 달라고 우기는 경우가 일본의 독도 영유권 문제이다. 잊을 만하면 뜬금없이 벗어달라고 떼를 쓰는 일본은 분명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만들어 국제사법재판소로 끌고 가려는 의도가 진작부터 드러나 있었다. 독도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우리는 독도의 ‘영토주권’을 확보하기 위해 여러 가지 역사적 근거와 객관적 자료들을 제시했고 대안도 내놓았다. 그러나 그 때뿐, 일본 쪽이 좀 수그러들면 어느새 그 격분했던 감정은 사그라지기 일쑤였다. 어느 것 하나 지속적이고 전략적인 대책은 마련되지 않았다.

일본의 독도 문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중국의 이른바 동북공정 또한 우리 국토를 침탈하려는 의도에서 일본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남북이 양분된 상태가 고구려사와 현 국경선을 경계로 하는 국토 영유권 문제를 소홀하게 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밉고 괘씸하지만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일본처럼 우리들도 다각적인 정책과 외교적 역량을 모아 꾸준하고 슬기롭게 영토주권을 지켜야 한다. 독도를 수호하려는 정부와 국민의 열망이 그만큼 지속적이고 책략적이지 못한 데서 영유권 문제는 계속 불거진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주권 문제는 언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글로벌(국제화)시대이니까, 영어가 공용어처럼 통용되니까 허용된다는 암묵적인 배려가 깔린 듯하다. 일상 언어생활도 그렇고 신문이나 방송 언어들도 하나같이 외국어를 국어처럼 사용하고 있다. 국어순화에 앞장서야 할 언론매체들은 시세에 편승하여 오히려 국어를 망그러뜨리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에 기사화되거나 보도된 신문 방송 내용 중에 외국어(영어)를 마구 사용한 것 중, 특히 전문용어를 어휘풀이나 미니해설도 하나 달지 않고 그냥 사용한 사례를 살펴보면 <서든 어택 얼라이브 대회 개최, 삼척 R&D 센터 들어선다, 알카리 내화피복제 개발을 위한 MOU 체결, GMC 지상 3층 규모> 등을 들 수 있다. 자주 나오는 용어이긴 하나 어쩌다 읽는 독자들을 위해 생소한 외국어에 해설을 일일이 붙임으로써 친절한 신문이란 이미지를 획득함과 동시에 가독률을 높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젊은 층의 시청률을 확보하기 위해 최근 오락방송은 아예 문법을 무시하고 과감하게 어간 축약형 어휘를 지문으로 사용하거나 언중사회가 아직 동의하지 않는 조잡한 단어를 남용함으로써 언어질서를 파괴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부끄(부끄럽다) 쑥스(쑥스럽다) 넘(너무) 쩐다(쩌들다) 지는(자기는) 쌤통 싹쓰리 대박 마빡 왕민망 얼짱 돌아이 등, 티비를 한 시간만 켜놓고 지켜보고 있으면 우리의 언어가 근자에 이르러 얼마나 농락당하고 있나 실감함과 동시에 검역주권, 영토주권만 외칠 일이 아니라 우리글 우리말의 주권도 심각하게 논의할 때라는 점에 동의할 것이다.

중국이 간자체를 사용함으로써 구세대와 신세대 간의 문화 단절 현상을 가져온 전철을 우리가 다시 밟지 않으려면 외국어 사용에 장기적인 대안과 언어정책이 필요하다. 언어는 그 나라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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