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만 식

경동대 교수(시인)
삼국시대부터 즐겨왔던 매 사냥이, 고려 때는 ‘응방(鷹坊)’이란 매 사육 기구를 둘 정도로 소중히 여겼다. 특히 사냥할 수 있는 보라매를 키워내기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어서 매를 탐하는 일이 종종 생기게 되었고, 송사도 잦았다. 그래서 매의 주인은 도둑맞거나 서로 뒤바뀌는 것을 막기 위하여 소뿔로 얇게 만든 자신만의 특별한 명패를 꽁지 털 속에 매달았는데, 이것을 ‘시치미’라고 했다. 지금의 독도 문제를 보면 일본은 저들의 시치미를 만들어 놓고 아주 교묘하고도 정밀하게 우리의 시치미 떼는 시나리오를 가동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시나리오는 세 종류일 것이다. 한국의 시치미가 스스로 지워지기를 기다리거나, 조금씩 지워나가거나, 떼어버리고자 하는 도발이 그것이다.

첫째의 것은 희박하다. 그런데 한국이 자충수를 두는 경우가 더러 있으니 그들의 입장에서는 포기할 일이 아니다. 대표적인 자충수는 1998년 체결한 2차 한·일 어업협정이다. 독도가 아닌 울릉도를 기점으로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잡음으로써 독도는 ‘중간수역’에 편입하게 되었고 이를 일본은 ‘잠정수역’이라는 표기로 지도를 만들어 홍보에 이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독도 문제에 관한 한 우리 정부가 당한 꼴임을 부인하기 어렵게 되었다. 일본 외무성의 일관된 독도 자료 게시와 달리 눈치에 들끓었다가 슬그머니 철회하는 한국정부의 일관성 없는 자세도 그러하다.

둘째 것은 매우 교묘하고 질기다. 그 대상에 한국인도 예외일 수 없다. 가령 시마네현(島根縣)의 한글 사이트에서 “이 섬은 마실 수 있는 식수가 부족하여 사람이 상주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으나”라고 독도를 설명한 대목을 보면 별 의의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유엔 신해양법 121조 3항 “인간이 거주할 수 없거나 독자적인 경제 활동을 유지할 수 없는 암석은 배타적 경제수역이나 대륙붕을 가지지 아니한다.”와 연결하면 사정은 달라진다. 무심코 일본의 설명에 동조하다보면 독도의 임자는 모호해져 버린다. 동해 표기를 일본해로, 독도를 ‘주권 미지정 지역의 리앙쿠르암(Liancourt Rocks)’으로, 여기에 잠정수역 표기까지 가세하면 영락없이 일본 이미지에 독도가 놓인다.

셋째 것은 없거나 먼 장래의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의 군비와 우경화 속도로 볼 때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러시아가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는 남쿠릴열도(북방 4개섬)에서 우리 어선들이 조업을 했을 때, 일본은 “자신의 영해 주장지역이므로 심각한 법적, 정치적 문제다”라며 조업 중단을 강력히 요구한 바 있는데 이러한 태도가 장차 독도 수역에도 적용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유사한 계기로 트집을 잡고 도발해올 지도 모른다. 이를 지나친 우려로 본다면 과거 침탈의 역사도 이러한 안일한 생각에서 온 것임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이제부터 우리의 시치미를 잘 갈무리하는 데에서 나아가 우리의 시치미를 능동적으로 알려야 한다. 세계는 이미 분쟁지역으로 기정사실화 하고 있음을 정부는 깨닫고 제2의 영토 침탈의 야욕을 이슈화하고 실효적 지배를 더 공고히 하는 것 외에 장기적인 플랜과 대응 매뉴얼이 있어야 한다.

독도 문제는 학술적 차원에서의 우위가 중요하므로 신진학자를 양성하고 동북아역사재단 등 학술단체 간의 유기성도 공고히 해야 한다. 자라나는 세대에게도 논리적 지식이 뒤지지 않도록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솔직히 제3자 입장에서 보면 일본의 대내외 홍보물이 더 일목요연함을 느낄 지도 모른다. 일본 시마네현과 경북 홈페이지를 각각 보라. 일본 자료가 더 명료함을 느낀다면 나 또한 그들의 시치미 지우기에 말려들고는 있지 않은지 염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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