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 호 철

천주교 춘천교구 사목국장·신부
일주일 후면 광복 63주년이자 대한민국 정부 수립 60주년입니다. 국가 차원에서의 대대적인 경축행사가 거행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해방 후 60여 년의 역사는 분단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지난 시절 우리 민족은 전쟁을 겪었고, 서로를 용서할 수 없는 적으로 여기고 살아왔습니다. 남북 관계는 항상 살얼음판 같아서 조금 꽃바람이 불다가도 한순간에 얼어붙기 일쑤였습니다.

남과 북 모두 통일을 이야기하고 민족을 이야기하지만 언제나 체제의 안정이 우선이었고, 그 속에 사는 개인은 항상 희생자였습니다. 실향민들은 고향을 그리워하며 살다가 죽어 갔고, 이산가족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가족을 만날 날을 기다렸지만 그 날은 오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에 벌어진 일련의 비극적 사건으로 인해 그나마 실낱같이 이어지던 희망의 끈이 끊어지고, 남과 북은 다시 냉전시대로 돌아간 느낌입니다 필자는 정치나 사상 그리고 위정자들의 통치를 논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오랜 세월 갈라진 우리 민족의 아픔과 분단으로 인해 희생되고 있는 개인들의 가슴 아픈 사연들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크로싱(건너감)’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긴 숨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서로의 상처와 아픔을 보듬으며, 공존과 상생의 시대로 건너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살기 위해 누군가 죽어야 한다면, 내가 사는 이 시대에 우리의 이웃이 굶주리고 죽어간다면, 그것은 정치와 사상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성’과 ‘사랑’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강원도는 분단 지역입니다. 우리가 자주 잊고 살지만 북쪽에도 강원도가 있습니다. 천주교 춘천교구도 분단 교구입니다. 춘천교구 관할의 절반은 북쪽에 있습니다. 물론 북강원도에는 교회가 없습니다. 그러나 천주교 춘천교구는 나머지 절반에 대한 관심을 잊지 않고 이미 십여 년 전부터 ‘천주교 춘천교구 남북 한삶위원회’라는 기구를 통해 다양한 형태의 교류와 지원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금강산 지역 주민들의 겨울나기를 위해 연탄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필자도 여러 차례 직접 연탄 배달을 위해 북쪽을 방문했습니다. 저 역시 강원도민이라는 말에 반가워하면서 함께 땀을 흘리며 연탄을 하역하던 그들의 모습은 우리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이와 함께 도내에는 여러 곳에 많은 새터민들이 정착하여 살고 있습니다. 새터민들이 느끼는 어려움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고, 그들이 이 사회에 올바로 적응하기 위해서는 많은 도움과 관심이 필요합니다.

이런 노력은 우리 모두가 간절히 원하는 통일과 민족의 통합을 준비하는 일이고, 더 나아가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계명을 실천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는 어디를 둘러봐도 쉽게 십자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십자가들이 진정한 구원과 참된 의미의 ‘건너감’을 실천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필자 역시 종교인으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 안에서 종교가 지녀야 하는 본래의 사명과 존재의 목적을 온전히 수행하고 있는지 반성해 봅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저 십자가가 높이 들린 모든 곳에 진정한 평화와 기쁨이 있기를, 어느 누구도 저 십자가 아래에서 삶의 고통과 소외의 아픔을 겪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믿는 사람이든 그렇지 않든 모든 이에게 십자가는 참된 구원과 생명으로의 건너감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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