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재현 한림대학교 전자물리학과
여름 한낮, 중천에 떠있는 태양이 발산하는 강한 빛을 보면서 인류는 과거로부터 항상 그 강한 태양빛의 원천에 대한 궁금증을 가져 왔다. 현대 과학의 눈부신 발전 덕분에 이제 태양 속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현상들이 매우 잘 이해되고 있다. 태양의 내부를 들여다 보게 되면 1500만도의 초고온과 엄청난 고압의 환경 속에 원소들이 원자핵과 전자들로 분리되어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는 플라즈마(plasma) 상태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플라즈마를 구성하는 주요 성분인 수소(원자번호 1) 원자핵들이 충돌과정을 통해 조금 더 무거운 원소인 헬륨(원자번호 2)으로 바뀌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줄어드는 질량 손실분이 아인슈타인이 내놓은 유명한 공식인 E=mc2(여기서 m은 질량 손실분, c는 빛의 속도, E는 질량 감소에 의해 발생되는 에너지를 의미한다)에 의해 엄청나게 거대한 에너지로 변환된다. 이를 핵융합 과정이라 한다.

최근 지구온난화로 상징되는 환경 문제와 석유 가격 급등에 따른 에너지 고갈 문제가 부각되고 얽히면서 ‘대체에너지’ 개발이 지구촌의 최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석유로 대표되는 화석연료의 고갈에 대비해 인류 문명의 지속적인 발전을 가능케 하는 가장 이상적인 에너지원은 무엇일까? 태양광, 풍력, 바이오 연료 등 다양한 대체에너지가 개발되거나 일부 사용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아름다운 지구의 존재 자체를 가능케 하는 가장 근본적인 에너지의 원천인 태양 그 자체를 지구 위에 구현하고자 하는 ‘인공태양’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각 국가별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핵융합 과정을 지구 상에서 일으키는 원리는 매우 간단하다. 즉, 핵융합 반응에 참가하는 수소나 중수소와 같은 가벼운 원소들을 일정한 공간에 가두어 놓고 매우 높은 고열로 가열해 주어 핵융합반응을 유도하면 된다. 지구 위는 태양 내부와 같은 고압의 환경이 아니기 때문에 최소 1 억도 이상의 온도를 유지해야만 핵융합반응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지만 수억 도의 고온을 견디며 플라즈마를 담을 수 있는 용기는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과학자들이 고안해 낸 방법은 초전도 자석을 이용해 만든 강력한 자기장으로 수억 도의 플라즈마를 허공에 띄워 가두는 것이다. 즉 소위 물리학의 전기자기적인 힘을 이용해 눈에 보이지 않는 그릇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런 원리에 근거해서 핵융합과정을 연구하기 위한 실험로인 차세대형 초전도 핵융합연구장치(일명 케이스타, KSTAR)가 최근 대전에 완성되어 최초의 불꽃을 밝힌 바 있다. 이 시운전에서는 직경 10 미터에 영하 269도의 극저온으로 냉각된 초전도자석을 이용해 약 200만 도의 고온 플라즈마를 약 0.25초 정도 유지할 수 있었다. 향후 플라즈마의 온도를 높이고 유지시간을 늘릴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될 예정이다. KSTAR를 이용한 인공태양의 연구는 국제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KSTAR의 연구 성과는 현재 우리나라와 미국, 러시아 등 7개국이 공동으로 참여하여 프랑스에 건설하고 있는 국제핵융합실험로인 이터(ITER) 및 그 다음 단계로 건설되는 국제시험발전소(DEMO)의 성공적인 운전에 매우 중요한 근거로 활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국제적 협력사업의 내부에는 항상 각 나라간 치열한 주도권 경쟁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특히 소재기술 및 핵융합발전 실용화 기술 등의 분야에서 취약성을 가지고 있는 우리 나라로서는 KSTAR의 성공적인 운영을 기반으로 국제 공동연구에 적극 참여하여 필요한 원천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기회로 삼으려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보인다.

향후 수십 년은 인공태양의 실현 가능성이 검증되는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 이것이 성공한다면 단순히 친환경적인 무한에너지를 얻어 인류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한다는 차원을 넘어서서 인류 문명의 패러다임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뀌는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인공태양을 향해 내딛는 국내 과학자들의 신중하지만 희망찬 첫걸음에 힘찬 성원의 박수를 보낼 때이다.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