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 영 오

극단 노뜰 대표
매년 100여명의 작가, 안무가, 연출가, 무대디자이너, 행위예술가, 배우, 무용수, 작곡가와 이태리, 폴란드, 영국, 미국, 그리스, 이란, 미얀마, 홍콩, 필리핀, 일본, 호주, 대만, 중국, 이스라엘, 체코, 덴마크, 인도네시아, 그리고 멀리 멕시코와 네팔, 세르비아 인들이 창작을 위해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재교육을 위해 왁자지껄한 곳이 있다.

그곳은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후용리의 작은 마을에 있는 후용공연예술센터다. 이곳을 다녀가 본 적 있는 사람들은 한국에서 가장 국제적인 예술 공간을 후용공연예술센터로 꼽는다. 이곳에서는 해외에 나가지 않더라도 생생한 예술정보 교류가 진행된다. 국내외 문화예술기관에서는 운영사례를 분석하기 위해 센터의 방문이 잦다.

그런데 이곳은 공공기관이 아닌 민간의 작은 공연단체가 운영하고 있다. 경기문화재단은 최근 안산의 작은 마을에 유사한 레지던스(예술가 거주) 공간을 마련해 직영에 나섰다. 몇몇 지자체에서도 이러한 레지던스 공간을 마련 중이다. 눈치 빠른 지자체에서는 예술가 유치에 앞장서고 있다. 공간여건이 좋아도 상주 예술가들이 없으면 창작공간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산업을 얘기하고 싶다. 요즘 문화, 예술을 이야기 할 때 관광 또는 산업이라는 말을 쉽게 사용한다. 아직 우리 문화계가 산업이 되기에는 환경적으로 성숙하지 못했음에도 누구나 관광화, 산업화를 우선으로 얘기한다. 언론도 문화공간을 관광자원화 해야 한다는 말을 쉽게 한다.

대중에게 인지도 있는 곳을 특필해서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문화계에서도 정책과 언론을 설득하기 위해 이런 관행에 익숙해있다. 다른 말로, 예술가 모두가 관광과 산업의 역군이 되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절집에도 포교당과 수행도량이 있는 법이다. 대중을 직접적인 대상으로 하는 포교당은 대중들이 항시 드나드는 곳이지만, 수행도량은 올곧이 스님들의 수행만을 위한 곳이다. 후용공연예술센터는 일반대중에게는 창작 작업을 공개하는 시점이 아니고는 잘 공개되지 않는다. (물론 늘 대문은 열려있다.) 일상적인 볼거리나 체험 프로그램도 갖고 있지 않다. 멋진 간판도 문패도 없다. 차를 타고 지나가다보면 길을 잃기 마련이다. 많은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들어 창작에 방해를 받고 싶지도 않다. 이런 마음을 아는 사람들은 조용히 와 운동장에서 산책을 하거나 공놀이를 한다. 그리고 공연이나 오픈 스튜디오 등 창작을 공개할 때는 수준 높은 관객이 된다.

수행도량을 지켜 스님들의 수행을 장려하지 않으면 포교도 아무 의미 없듯 예술창작이 지켜지지 않고는 문화산업도 문화관광도 공수표에 지나지 않음을 언론과 정책에게 말하고 싶다. 예술은 존재하는 것으로 이미 삶을 풍요롭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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