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일본 서부 시마네현(島根縣)을 여행하다가 참으로 불쾌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해외 여행을 하다보면 순간순간이 새롭고, 즐거운 것이 보통인데 시마네현에서는 한국인 여행객들이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다. 현청이 자리잡고 있는 마쓰에(松江)시 중심가의 홍보판 때문이다. 그곳에는 ‘돌아오라 섬과 바다’, ‘고유영토 다케시마(竹島)’ 등의 문구가 새겨져있다. 홍보판은 밤이면 더욱 화려하게 불을 밝혀 현청 앞 거리를 오가는 사람은 눈을 돌리려해도 외면할 수 없는 시설이 된다.

시마네현은 지난 2005년 2월에는 저들말로 ‘다케시마의 날 조례안’을 가결, 우리 국민들의 공분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고, 지난해에는 현청 별관쯤 되는 곳에 ‘다케시마 자료관’을 만드는 등 일본내에서 독도 영유권 주장의 전면에 서있는 곳이다. 자료관에서는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의 영상·기록물을 모아 전시하고, 독도 문제 전문가를 초청해 시민들을 대상으로 토론 강좌까지 벌이며 교육·홍보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지난 1905년 현 고시를 통해 ‘독도’를 자기들 영토로 삼았다는 것에서 연유하는 시마네현의 자극적 행보는 일본 입장에서는 국제사회에 독도가 분쟁지역이라는 것을 각인시키는데 더없이 좋은 ‘감초 역할’인 것이다.

시마네현이 앞에서면 외무성과 문부성 등이 독도 분쟁화에 지원 포격을 하는 식의 포석을 통해 일본은 지금까지 독도 영유권 주장을 되풀이 해왔다.

자극적 행보가 반복될 때마다 우리는 온나라가 들고 일어나 일본의 영유권 망동과 역사 왜곡을 규탄한다. 어찌보면 국제사회를 향해 “독도는 분쟁지역 입니다”라고 우리가 오히려 홍보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뉴스를 보니 러시아도 최근 우리와 비슷한 일을 겪었던 것 같다. 일본이 “북방 쿠릴열도 4개섬을 러시아가 불법 점거하고 있다”고 신학습지도요령해설서에 명기했는데, 그에 대한 러시아 정부의 대응이 더 주목을 끈다. 외무부에서 “일고의 가치도 없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는 유감 성명을 낸 게 전부였다. 흥분하면 일본의 분쟁지역화 전략에 말려든다는 것이 러시아의 생각이다.

그래서 떠올려 본 곳이 우리 강원도 동해안이다. 특히 삼척은 울릉도, 독도와 가장 깊은 인연을 맺어 온 지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기 505년부터 실직(悉直·삼척)과 하슬라(何瑟羅·강릉) 군주를 차례로 역임한 신라 장군 이사부(異斯夫)가 512년 지증왕 13년에 우산국을 정벌한 것도 이곳 동해안이다. 조선 조정이 3년에 한번씩 울릉도 등지를 순찰하게 했을때 관리들의 출발지 역시 가장 가까운 삼척 등 동해안이었고, 영장(수군첨절제사)이 주둔하면서 주기적으로 해방(海防)과 순찰에 나선 것도 우리가 지금 터잡고 살고 있는 동해안이다.

그런 노력을 높이 사 국제해저지명소위원회(SCUFN)는 지난해 동해에 해저지명 10곳을 새롭게 등재하면서 ‘강원대지’, ‘우산해곡’, ‘김인우 해산’ 등 강원도와 매우 인연이 깊은 이름을 곳곳에 붙였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이 ‘김인우(金麟雨)’라는 인물인데, 김인우는 1417년(태종 17년)과 1425년(세종7년)에 우산·무릉 안무사에 임명돼 병선 2척을 거느리고 울릉도 등지를 민정 시찰한 삼척 사람이다.

1696년 안용복의 활동을 통해 독도가 조선 영토임을 확인하고, 1869년에는 태정관(太政官) 문서를 통해 재삼 확인하고도 1905∼1906년의 뒤늦은 고시를 이유로 억지 주장을 반복하는 일본과 그 전면에 서있는 시마네현.

우리도 역사를 따져 울릉도·독도 ‘수호 성지(聖地)’ 하나쯤은 만들 필요가 있지 않을까? 구태여 온나라가 나서 요란을 떨지 않아도 독도가 우리땅임을 실증적으로 웅변하는 곳. 동해안의 이사부장군 기념사업을 국책사업으로 추진해야 하는 이유가 더욱 분명하지 않은가. 최동열 삼척주재 취재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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