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희 정 강원여성연대 상임대표
정부수립 60년을 맞아 MBC와 한국사회학회가 ‘한국인의 삶에 대한 생각’을 조사한 내용 중 20대 여성층의 48.5%가 다시 태어나면 한국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다고 해서 인터넷이 뜨겁다.

인터뷰에 응한 20대 젊은 여성들은 자기 계발을 위해서는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자아실현이 우선이고 일도 공부도 똑부러지게 했다고 한다. 솔직하게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것에 대해서도 당당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엄마로부터 너도 남자처럼 공부해서 성공해라 하고 뒷받침을 받고 자랐어도 막상 대학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보니 남자들하고 경쟁이 안 되는 현실에 부딪힌다고 했다. 실제로 현재 자기 위치에서 향후 개인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 만족하냐는 질문에, 절반이 넘는 20대 여성이 만족하지 못한다고 답을 하고 있었다.

또한 결혼을 했을 시에는 가족에 대해서도 시댁에 대해서도 신경도 많이 써야 하고 가사분담도 여전히 여성의 몫으로 남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태어나면 한국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냐고 했더니 48.5%의 20대 여성들이 그럴 수만 있다면 다른 나라에서 한번 태어나 보고 싶다고 했다는 것이다.

2007년 한국의 남녀평등지수는 157국 중 26위라는 비교적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 그러나 한국의 여성권한지수는 93국 중 64위였다.

남녀평등지수는 교육 수준과 평균수명, 그리고 예상소득을 기준으로 삼는 반면, 여성권한지수는 국회와 입법기관 여성 비율, 고위임직원 및 행정관리직 여성 비율, 전문기술직 여성 비율, 남녀 소득비를 살핀다.

여성권한지수가 가리키는 것은 한 사회에서, 국가기구에서 여성이 확보하고 있는 의사결정권의 정도이다. 여성권한지수는 단순히 남성과 대비되는 여성이 얼마나 동등하게 의사결정권에 참여하고 있는가를 가리키지 않는다. ‘여성권한’은 여성 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가 ‘성인지적 감수성’을 가지고 의사를 결정하고 참여하는 권한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어떤 문화·사회·경제적 편견에 의해서도 제한되지 않은 채, 의제를 정하고 그 의제를 실현하는 과정에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권한, 이것이 바로 젠더 권한, 즉 성인지적 감수성에 기반을 둔 권한인 것이다.

여성권한지수가 93개국 중 64위인 나라보다는, 내가 건강하고 행복한 미래비전의 적극적 주체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이 없는 나라보다는, 기대할 것이 있고 희망이 있는 나라에서 한번 태어나보고 싶다고 한들 이를 나무라기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여중 2년생인 딸아이가 방송을 보며 왜 저들은 우리나라에서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하는 거야? 라고 묻는다.

딸을 키우는 엄마로서 내 딸아이는 여성과 남성의 차이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는 사회에서 그 다름을 인정하며 상생하고 공존할 수 있는 그런 삶을 꾸리기를 바란다. 그러나 아직까지 오늘날의 당찬 20대 여성들에 대해 한국 사회의 현실은 이들을 수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방송 말미에 담당 기자가 한 말이 가슴에 남는다. “한국이 싫다기보다는 한국이 비좁다는 이들의 가능성을 긍정적인 성취로 바꾸는 건 우리 사회의 몫이라는 지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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