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궁 연

영동본부 취재부장
‘사람이 길을 걸을 때 걷는 부분은 지면의 일부이다. 발로 밟을 자리만을 남기고 그 밖의 부분을 모두 파내 버린다면 과연 사람은 제대로 걸을 수 있을 것인가.’

일찌기 ‘유용의 용(用)만을 알고 무용의 용을 모른다’며 무용지용(無用之用)을 일깨운 장자(莊子)의 말이다.

유용만을 취하는 세태를 꼬집으며 ‘오히려 무용을 앎으로써 비로소 유용을 함께 논할 수 있다’고 했다. 밟을 자리가 소위 유용(有用)이요 그 밖의 부분이 무용(無用)이다.

지난 5일 강릉 성내동 광장이 인파로 채워졌다. 대통령의 약속을 지키라며 어린이의 호소문이 낭독되고, 시장, 국회의원, 의회의장 등 내로라하는 지역 인사들이 머리를 깎고 혈서를 쓰며 원주∼강릉 복선전철의 조기착공을 촉구했다. 이 장면을 지켜본 시민들은 눈물을 흘렸다.

비극은 지난해 7월 시작됐다. 2014동계올림픽 유치 실패는 원주∼강릉 복선전철이 궤도를 이탈하는 계기가 됐다. KDI(한국개발연구원)의 경제적 타당성 조사 결과 비용편익비율(B/C)이 0.287로 투자 기준이 되는 ‘1’을 크게 밑돌고 있다는 그럴듯한 이유가 내세워졌다.

하지만 1996년 서울대공학연구소의 조사에서 원주∼강릉 복선전철 사업은 B/C 1.03을 받았다. 그리고 2000년 한국교통연구원 조사에서도 B/C 1.09를 받았다. 조사 시기와 기관, 조사의 방법, 혹은 타당성 조사를 의뢰한 기관의 의도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의심을 품을 만한 대목이다.

인구가 적고, 도시화도 부진하고, 산악지형이 많은 강원도에 단지 수익만을 따지는 경제적 잣대를 들이 댈 경우 철도는 물론 대부분의 사회간접자본은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만다. 하지만 모든 결정이 수익에 의해 좌우된다면 그건 ‘기업’이지 ‘국가’가 아니다. 정책이나 정치는 더욱 아니다. 호남고속철도의 경우 경제성 조사 결과 B/C가 0.39로 낮게 나왔지만 제13대 대통령 공약사업으로 추진된 전례도 있다.

‘비용(Cost)’의 투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Benefict)’은 단지 경제적인 분야에 국한된 결실만은 아니다. 그래서 정책적 또는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 철도 티켓을 팔아 거둬들일 수 있는 돈을 헤아리는 것보다 강릉을 비롯한 영동지역 사람들의 절박한 심정을 저울에 달아보는 일이 때로는 더욱 중요한 기준이 될 수도 있다. 한쪽의 빵, 한자루의 쌀이 지닌 효용은 받는 사람의 처지에 따라 너무나 다르게 평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태백산백으로 가로막혀 낙후된 영동지역에 미칠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에 더 높은 점수를 주면 어떨까? 수십년간의 소외가 오늘날의 삶을 억누르고, 다된 것처럼 보여졌던 국책사업이 좌초 위기를 겪는 참담한 현실에서도 대통령을 바라보며 조용한 해결에 나선 강원도의 ‘착한 심성’에 점수를 주는 정책은 없을까?

무용(無用)하다 하여 내버려두면 장차 유용(有用)의 영역조차 송두리째 무너질 수 있다는 장자의 경고를 일깨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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