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광호

산건축사무소 대표
세계의 도시들은 왜 ‘도시 디자인’에 골몰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앞으로 도시의 발전은 디자인에 달려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디자인 도시란 바로 디자인을 활용해 도시의 경제와 문화를 발전시키고 궁극적으로 시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반을 갖춘 도시라 할 수 있겠다. 외국뿐 아니라 우리나라 각 자치단체들도 도시 디자인을 많은 정책적 과제로 계획하고 있고 일부는 실행에 옮겨지고 있다.

그렇다면 세계의 도시 디자인 흐름은 어떨까. 필자는 최근 (사)한국문화공간건축학회의 일원으로 세계디자인 수부(World Design Capital)를 내세우고 있는 토리노를 다녀왔다. 북부 이탈리아의 피에몬테 주(州)의 주도인 토리노(Torino)시. 우리에게는 2006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알려진 곳이다. 토리노는 2008년 국제디자인연맹에 의해 WDC(World Design Capital) 시범도시로 지정된 곳이다.

유럽의 도시들이 그렇듯이 로마시대의 흔적이 많은 토리노는 도시 구조가 단아하고 고풍스럽다. 어느 도시엘 가나 똑같은 외형의 건물이 들어선 우리로서는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토리노는 자동차 명품인 ‘피아트’를 탄생시킨 자동차 산업의 메카로 근대화 초기부터 디자인의 중요성이 대단히 강조됐던 도시였다.

토리노 역시 대규모 국제 행사를 개최할 때 새로 건물을 짓기보다는 기존의 건물을 개보수해 각 용도에 맞게 사용하는 유럽의 도시처럼 동계올림픽을 치렀으면서도 기존의 도시구조를 크게 바꾸지 않고 토리노만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필자가 토리노 디자인 순례에서 느낀 점은 단순히 멋진 건물과 외양으로 도시를 치장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 곳곳에 문화를 퍼트려 놓는 문화마인드를 도시에 접목했다는 것이다. 또한 도시공간을 바꾸는데 있어서도 환경적 영향을 최소화 하는 기법을 써 사람과 자연이 조화된 도시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토리노 역시 도시 디자인에 생태와 문화를 녹여내고 있는 도시였다. 토리노의 세계 디자인 수부 정책의 테마는 공공 디자인, 경제와 디자인, 교육과 디자인, 디자인 정책 등 4가지로 압축된다. 또 도시와 디자인의 관계를 연구 발전 육성시키기 위해 시민그룹, 사업자 그룹, 교육자 그룹, 학회 등 4개 그룹으로 나눠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건물은 아무리 높고 커도 짧은 기간 내에 지을 수 있지만 디자인 도시는 결코 단기간에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디자인 도시는 짓는 게 아니라 만들어 가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디자인 도시는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생각, 그 지역만의 문화와 전통, 철학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얼굴의 도시가 나올 수 없다.

필자는 감히 말한다.

도시 디자인은 기술이 아니라 예술이다. 가판 하나를 만들더라도 그 안에 그 도시의 이미지와 정신이 들어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늦었지만 강원도도 디자인의 중요성을 인식해 ‘디자인 강원’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내가 사는 춘천도 ‘디자인 춘천’ 계획을 수립해 도시의 얼굴을 바꾸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다행이면서도 한 가지 우려가 되는 것은 우리의 조급증이다. 잘 된 도시는 배우되 외형에 치우쳐 요꼬하마나 뉴욕, 토리노의 아류도시를 만드는 누를 범해서는 안된다.

우리춘천은 한국의 토리노가 될 수도 없고 될 필요도 없다. 우리만의 색깔을 가진 도시를 만들면 된다. 디자인 도시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배우되 외형까지 닮진 말자. 입고출신(入古出新)이라 했다. 우리의 문화와 전통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새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사진 한 장만으로도 그 도시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는 도시, 그것이 바로 디자인 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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