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석래

평창영월정선축협 조합장
가을은 가을인데 가을이 아니다. 가을 들판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수확철의 기쁨보다 깊은 한숨과 탄식이 저절로 나온다.

농촌이 어디로 갈 것인가, 농민들이 어떻게 살 것인가, 몇년 후에는 농촌이 텅텅 비어 농민은 모두 사라지고 가끔씩 띄엄띄엄 펜션들만 보이게 될 것이고 농촌의 역할, 즉 식량을 생산하고 아름다운 전원 풍경으로 도시민들의 찌들고 지친 생활에 잠시 도피처가 돼 주고 에너지를 재충전시켜 주는, 요즘 전문가들이 이야기 하는 농촌의 어메니티(Amenity)는 헛방이 될 것이란 성급한 걱정이 앞선다.

며칠전 정선에서 고랭지채소 농사를 짓는 조합원과 전화통화를 했다. 금년처럼 배추, 무 값이 처음부터 끝까지 없기는 처음이란 말을 들었다.

배추 5t 트럭 한대에 산지에서 70만~80만원 한다고 했다. 트럭한대 생산비만 150만원이니 트럭 한대분량을 생산하면 50%이상이 적자라고 한다.

금년 들어 어느 한 품목이라도 제값을 받은 농작물이 있었는가! 고랭지에서 생산되는 주 품목인 무, 배추는 물론이고 옥수수, 감자, 고추, 양배추 등 어느 품목하나 돈 되는 것이 없었다.

연말에는 농·축협에서 빚 독촉을 할 것이고 그러면 무엇으로 빚 정리를 한단 말인가.

고랭지 농민들의 가슴이 바짝바짝 타들어가고 있다.

다가올 빚 정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아이들 학비는 어떻게 하며 그것보다 당장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면 대다수의 농민들의 마음은 억장이 무너진다는 표현이 맞는 말이다.

10여년 조합장을 하면서 금년같이 무력감에 빠져 본적은 처음이다. 지도자는 희망의 등불을 들고 앞서가는 것인데 희망의 등불을 들고 앞서고 있는 지도자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다들 똑같이 모르쇠이거나, 무관심이거나, 자기 이해관계에 함몰되어 있다.

농촌 지도자들이여! 지금이야말로 농촌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다시 한번 의견을 모으고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 백척간두에 매달려 있는 고랭지 농업을 어떻게 할 것인가 처방을 내놓아야 할 때이다.

왜 도시근로자는 최저생계비를 보장해주는 최저임금제가 있는데 농민에게는 최저생산비를 보장해 주는 법은 없는지를 지금 따져 보아야 한다.

고랭지 농업이 가장 어려운 이때가 가장 좋은 고랭지 농업을 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대안을 만들 수 있는 기회라고 본다. 이 때가 고랭지 농업에 희망의 등불을 만들 수 있는 최고의 기회라고 본다.

각계각층의 농촌 지도자, 시 군행정, 협동조합, 농업경영인, 농촌지도자, 농업과 관련된 모든 기관 단체들이 모여 고심하고 연구하여 농촌이 농촌다운, 농민이 살기 좋고 도시민들이 편히 와서 쉴 수 있는, 우리의 후손에게 물려줄 때 후회없는 농촌이 될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지혜를 모을 때이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말이 다시 우리 농민들의 가슴에 살아나서 농촌에 산다는 것이 자부심과 긍지를 갖도록 힘과 지혜를 모으고 노력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