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이여.

생자필멸(生者必滅) 회자정리(會者定離)가 인간사 정해진 이치라고는 하지만, 오늘 오후 자네의 부음을 접하니 마치 한쪽 팔이 떨어져 나간 듯 망연자실할 따름이네.

자네의 청춘을 보듯 이 화사한 봄날, 아직도 자네를 기다리고 있는 그 많은 일과 가없이 사랑했던 가족, 지인, 친구들을 두고 어찌 그리 홀연히 떠났단 말인가.

오늘 오후 강릉시내에 볼일을 보러 나갔다가 임당동 네거리에 버티고 서 있는 자네의 본가를 지나면서 문득 자네의 자당(慈堂)과 자네 얼굴이 떠올라 홀로 실성한 듯 웃음지었는데 그게 영면(永眠)을 알리는 작별 인사였단 말인가.

강릉초등교를 졸업하고, 자네가 대처인 서울로 유학을 떠난뒤에도 친구들은 그 어릴때부터 자네가 보여준 정직과 성실을 기회있을 때마다 화제로 올리며 ‘강릉이 낳은 이시대의 선비’가 될 것 이라고 자랑삼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네.

돌이켜보면 자네는 격동의 근·현대사를 온 몸으로 헤쳐온 과학자요, 공학자요, 목민관이요, 기업인이었네. 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뒤 강원도지사로, 과학기술처 장관으로, 건설부 장관으로 발군의 역량을 발휘해온 자네의 족적이 우리 근·현대 발전사에 고스란히 배어있는 것 아닌가.

어디 한곳 자네의 손때가 묻지 않은 곳이 없잖은가. 자네가 남긴 체취가 너무나 생생하기에 아직도 부음이 믿기지 않네.

“강릉에 오면 강릉의 한식을 먹어야 한다”며 수구초심(首丘初心)의 고향사랑을 되새기고 지난 71∼73년 강원도백(道伯)으로 도정을 이끌때는 고향 도민들의 생활을 어루만지고 보다 나은 미래를 열기 위해 노심초사하던 벗의 모습이 오늘따라 새로운데 이제 어디가서 자네의 열과 정을 느낀단 말인가.

안전과 성실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토목 교량분야의 대가답게 평생 공평무사(公平無私), 불편부당(不偏不黨)을 좌우명처럼 여기며 강직한 선비의 풍모를 보여준 자네의 발자취가 우리 강원도, 더 나아가서는 민족의 장래에 큰 등불을 밝힐 것이라고 나는 믿네.

정다웠던 벗이여.

이제 못다한 일일랑 자네가 키운 후배들에게 맡기고 부디 평안히 잠들게나.

나는 그저 주체할길 없는 슬픔에 가슴을 칠 뿐이라네.



최돈포 강원도축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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